Episode 6.
8살이 되던 해, 너의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너의 국민학교 입학을 축하하던 날은 정말 특별했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그 시절엔 국민학교라고 불렀기에 여기에서는 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할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증조할머니까지 모든 가족이 총 출동해서 어린이대공원에 모여 너의 입학을 축하해 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고, 너는 어깨에 메어진 새 책가방이 자랑스러웠다. 그날 너의 가족은 공원에서 서로 사진을 찍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환하고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던 너에게, 아버지의 다음 행보는 충격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셨다. 1970년대 후반, 많은 아버지가 중동으로 돈을 벌러 가던 시기였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 비행기 타는 거 나도 따라갈래!”라고 외쳤던 너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긴 이별이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때면 가끔 외국에서 보내온 선물들이 너를 위로했다. 예쁜 외제 카메라, 반짝이는 연필깎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문구들… 상자를 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더 그리워졌다. 매일 옆에 계셨다면, 그 모든 선물보다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며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를 보았다. 손에 꼭 쥔 100원을 내밀고, 조그마한 노란 병아리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삐악삐악 울어대는 그 작은 생명에게 너는 “순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순돌이는 매일 너의 곁에서 자라났고, 금세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나중에야 순돌이가 암탉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 너는 매일 정성껏 먹이를 주고, 순돌이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순돌이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순돌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울면서 온 동네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머릿속에선 자꾸 누군가 순돌이를 훔쳐가 요리했을 거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동안은 밤마다 그 생각이 떠올라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순돌이가 네 삶에서 사라졌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순돌이를 잃으면서 네 어린 마음은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졌고,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상실을 배워갔다.
순돌이를 잃고 한동안 무료하게 지내던 너에게 또 다른 사건이 찾아왔다.
다락에서 ‘사각사각’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어머니는 한참 고민하시더니 쥐덫을 설치하셨다.
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섭고 불편했는데, 잡힌 쥐를 본 순간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머니는 쥐덫을 덫째로 물이 가득한 대야에 담갔다.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치던 쥐의 모습은 너를 얼어붙게 했다.
그날 이후, 쥐가 한 마리씩 덫에 걸릴 때마다 어머니는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셨다. 동생은 덫에 걸린 쥐의 꼬리를 잡고 장난을 쳤지만, 너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죽은 쥐가 살아 있는 쥐보다 더 무섭다는 걸 그때 깨달은 것 같다. 그 후로도 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림자만 보여도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곤 했고, 길거리에 쥐의 사체가 보이면 그 곳을 지나가지도 못했다.
2학년 가을, 어머니는 너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 어느 동네로 이사하며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었다. 이번에는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셨다. 고양이는 덫이나 약보다 훨씬 평화롭게 보였고, 사뿐사뿐 집안을 걸으며 너희와 함께했다. 하지만 쥐약을 먹은 쥐를 잘못 잡은 탓인지, 그 고양이는 2년 뒤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가족처럼 지내던 고양이를 잃은 상실감은 네게 또 다른 이별의 아픔을 알려 주었다.
그 무렵, 아버지가 돌아오셨었다. 트럭을 몰고 과일과 채소를 파는 일을 시작하셨고, 너는 구멍가게에서 자연스럽게 손님의 계산을 거들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계산을 하는 순간만큼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의 마음속에는 순돌이, 고양이, 그리고 한동안 부재했던 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너는 여러 번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조금씩 세상의 무게를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