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1980년대, 전세계약은 1년 단위였다. 달력이 여름으로 넘어갈 때면 너희 가족에게는 이사라는 계절행사가 찾아왔다. 먼지 냄새가 밴 이삿짐 보따리, 발바닥에 달라붙는 골목길 먼지,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이삿짐 아저씨들의 구두굽 소리가 여름의 배경음악이었다.
학교를 1년 내내 다니는 건 네게 사치였고, 매년 새로운 책상, 새로운 친구, 새로운 놀이터가 찾아왔다.
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 너희는 경기도 부천시 역곡이라는 산을 등진 동네 새 아파트로 들어갔다.
전깃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골목은 아이들의 발자국과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역곡은 정겨운 동네였고, 그곳에서 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났다. 바로 교회였다.
그 시절의 교회는 단순히 기도하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의 실내놀이터, 유치원, 키즈카페, 그리고 작은 테마파크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처음 발을 디딘 날, 예배가 끝나고 간식 시간이 찾아왔다. 하얀 플라스틱 쟁반 위로 달콤한 단팥빵과 성에 서린 시원한 우유 팩이 놓였고, 너는 숨을 들이마시듯 그 냄새를 삼켰다. 빵을 한입 베어 물자 폭신한 빵결 사이로 달콤한 팥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낯설던 교회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로 변했다.
간식을 먹고 나면 ‘놀이 시간’이 기다렸다. 삐걱대는 미끄럼틀, 양옆이 살짝 기운 그네,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얽힌 복도… 어린 너는 그곳에서 먹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느 날은 커다란 커튼이 걷히고 무대 위에서 연극이 시작됐다. 배우들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다. 너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다가, 대사가 절정에 다다를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야유회 날이면 더 특별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도시락이 담긴 보자기를 꼭 끌어안고 버스를 탔다. 근처 공원에 도착하면 돗자리를 펴고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보물찾기에서 작은 바가지 하나를 찾아냈을 때, 그 바가지 하나로 기분이 좋았고, '꽝'이라 적힌 보물 쪽지로 받은 사탕 하나는 너의 하루를 빛나게 하는 작은 보물이 됐다.
교회에서는 음악의 세계도 열렸다. 피아노 앞에 앉아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엉성한 멜로디를 만들 때, 드럼을 두드려 북소리가 가슴을 울릴 때, 너는 처음으로 ‘음악이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가장 설레는 순간—영화 상영 날이었다. 당시 영화관 티켓 값이 500원이던 시절, 공짜 영화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휴거’라는 제목이 뜨자마자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가족이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장면이 어린 네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그날 이후 너는 밤마다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 제발 휴거가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역곡에서 처음 500원을 내고 갔던 큰 영화관에서는 또 다른 기억이 생겼다. 엄마가 너와 동생에게 영화를 보여주려다 소매치기를 당했던 것이다. 지갑이 사라졌지만, 엄마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영화 보고 가자. 지금 잡을 수 없을 거야.” 그날 동시상영으로 본 ‘슈퍼 삼총사’와 ‘썬더볼트’의 화려한 색감과 모험은 네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어 영화관을 찾은 두번째 날에는 심형래 아저씨의 ‘우뢰매’ 시리즈가 상영되었고, 영구만 연기하던 아저씨의 멋진 모습에 너와 친구들은 스크린 속 영웅에게 함성을 질렀다. 악당이 쓰러질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고, 우뢰매의 두 영웅은 아이들에게 진짜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이사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그 중에는 아픈 기억도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시절, 산동네에 살던 너는 동네에서 정신적으로 아픈 여성이 옷을 벗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 당시에는 그게 흔히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또 신기한 물건등을 보여주며 아이들을 유혹하는 나쁘고 위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절 주변 여자아이들 모두가 두려움 속에 살았다. 어머니는 네가 그런 환경에 있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고, 결국 가족을 데리고 부천시 역곡으로 이사했다. 너희를 교회로 보내신 것도 일종의 안전장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오실 때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에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부유한 동네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동네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곳에서 미래를 보셨고, 가족의 터전을 마련했다.
비 오는 아침,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날, 너와 동생은 우산을 쓰고 학교로 향했다. 주머니 속에는 학습전과를 사라며 어머니가 주신 용돈이 있었다.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며 튀는 소리, 우산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그때 빨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키 큰 남자가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 그의 발소리가 물웅덩이를 밟으며 가까워졌다. “돈 내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 어린 너는 그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마 중학생 정도 였을 것이다.
무서운 건, 그 사건이 먼 골목이 아니라 집 바로 근처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이사를 준비했다. 원X국민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어두운 굴다리가 있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학교폭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빨간 티와 청바지의 남자는 여전히 네 기억 속 실루엣으로 남아 있다. 다행히 동생은 너무 어려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네 어머니의 선택은 태권도장에 너와 네 동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다고 그 어린 나이에 중.고등학생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어떠한 계기는 또 다른 성장으로 가는 단계인 듯 하다.
적어도 자기 한 몸은 지켰으면 하는 부모의 공통적인 바람이지 않았을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너는 결국 검은띠의 영광은 얻지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시절엔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태권도를 배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놀이형 도장이 아닌 정통 오리지널 태권도장.
그래도 살면서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영서 네가 다시 돈을 뺏기는 일은 없었던 건 다행이었지.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으슥한 곳으로 다니지 않는 습관이 생겼으니까.
겪지 않았음 좋았을 경험이기도 하지만, 결국 경험이 또 다른 방향을 찾아가도록 성장시키는 것은 무시 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