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1985년 여름, 영서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민혁이가 2학년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손을 잡고 함께 가주셨지만, 그 이후부터는 너희 남매의 몫이었다.
목적지는 전라도 광산면 비아면 비아리에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오리농장이었다.
“둘이서 잘 가야 해. 광주 터미널에서 내려서 비아삼거리 가는 시골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니까 기사 아저씨한테 꼭 물어보구 내려달라고 해.”
어머니는 여러 번 당부하셨다. 손에 꼭 쥐여주신 간식 봉지와 버스표는 그 자체로 든든한 보증수표 같았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끼리만 여행을 가도 무서울 것이 없었고, 주변 어른들이 “참 기특하네” 하며 챙겨주던 때였다. 지금 시대는 어쩌면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터미널에 도착한 너희는 다시 시골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은 매캐한 디젤 냄새와 함께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거울로 너희를 흘끔 보더니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가잉?”
“비아삼거리요!” 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메, 할매 집에 가는 거구먼. 걱정 말어라잉, 아저씨가 잘 내려다 줄테니께.”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은 들떴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논밭 풍경이 한층 더 따뜻해 보였다.
늦은 밤, 드디어 시골길에 내려섰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따라 농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멀리 보이는 작은 전등 불빛만이 의지였지만, 너희는 마치 모험을 떠난 탐험가처럼 발걸음을 재촉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반가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워메, 왔는가잉? 와따, 내 새끼덜 그간 잘 지냈다냐~”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많이 늦어서 빨리 엄마한테 전화해야 되요."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전화 교환원에게 부탁해야 했다. 낡은 전화기 옆에 달린 까만 손잡이를 어린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서울 000-0000 이요!”
잠시 후 연결음이 들리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너는 안도와 뿌듯함이 뒤섞여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 날 아침, 외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은 특별허게 오리 튀겨줄랑께, 영서랑 민혁이 몸보신 좀 혀야제~”
순간, 너는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곧 이어질 광경이 마음에 그토록 오래 남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외할아버지는 큼지막한 오리 한 마리를 잡아 목을 비트셨다. 그리곤 목을 치셨는데, 땅에 떨어진 오리의 머리가 눈을 꿈벅거리는 순간, 네 심장은 얼어붙었다. 오리는 그 상태로 꽤 오랫동안 뻐끔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 손이 미끄러져, 목 없는 오리의 몸이 피가 흐르는 목을 흔들며 이리저리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너는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공포영화속의 한장면 같았다.
민혁이는 멀찍이서 꾸벅꾸벅 조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금세 배고픔에 이끌려 할아버지가 튀겨내 온 오리를 맛있게 먹었지만, 너는 그날부터 오리고기에 입을 대지 못했다.
그 충격은 어른이 될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았고, 어머니조차 모르시는 비밀스러운 기억이 되었다.
외갓집의 여름은 놀라움과 충격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마다 죽어 있는 새끼 오리들을 외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쓸어 담아 끓는 물에 넣어 삶았고, 그것은 곧 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개들 역시 언젠가는 삼촌들의 몸보신용으로 쓰일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세상이 한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농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특별했다.
바로 TV 광고에 등장했던 노란 오리 두마리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저 오리 말여, 울 농장 거랑께. 억수로 많이 가져 갔다잉~ ”
외할머니의 말에 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고 속 두 마리 귀여운 오리가 포근하게 몸을 비비는 장면은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저 오리, 우리 할머니네 오리야”라고 자랑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귀여운 장면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오리들이 희생되었는지.
연약한 새끼 오리들이 수없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을 어린 너는 몰랐다. 지금은 AI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달해 동물들이 직접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실제 동물들이 희생되며 ‘광고의 귀여움’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외갓집의 여름이 그저 즐거움이나 공포로만 남은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 너는 세상이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걸, 귀여움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배워 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겪고도 여전히 외갓집의 기억을 사랑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가 그 모든 기억 위에 덮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방학특강 외할아버지의 ' 무릎꿇고 명심보감' 수업은 나중에 오리농장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사시던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지금 시대에 '명심보감' 수업을 하는 곳이 있을까?
만약 지금도 '명심보감' 같은 인성 수업을 하는 곳이 있다면 그때의 영서처럼 그때의 기억을 확인하듯,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름, 외갓집 오리농장은 그렇게 비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제는 어떠한 흔적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