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전학 & ‘쌍코피’추억

Episode 9.

by 현서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건 1996년 3월 1일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며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너의 어린 시절 기억 속 학교는 여전히 ‘국민학교’였다. 그래서 그 시절 부르던 그대로,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야기를 전하며 그때의 감성을 그대로 가져가려 한다.

너는 국민학교 시절, 무려 다섯 군데의 학교를 다녔다.
입학은 서울 금X국민학교에서 했고, 이어 부X동북국민학교, 서울 논X국민학교, 원X국민학교, 그리고 마지막은 삼X국민학교였다. 6학년이 되면 전학이 금지되었기에, 집이 멀어졌어도 매일 버스를 타고 삼X국민학교로 향했다. 네 졸업장은 결국 그곳 교정에서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살던 시절, 2학년 가을부터 3학년 여름까지는 논X국민학교에 다녔다. 교문 앞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노란 잎을 흩날렸고, 운동장은 금빛 융단처럼 변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잎을 모아 높이 쌓고, 그 위로 몸을 던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풍경도 오래가지 않았다. 3학년 가을, 또다시 원치 않는 전학. 이번엔 원X국민학교였다. 당시 한 반에 아이들이 빼곡했던 시절, 주소지에 따라 이사를 하지 않아도 학교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네 또래 아이들이 무더기로 함께 이동했다. 이동을 해도 한반에 50여명이 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잦은 전학은 너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은 서울의 많은 초등학교들이 입학생이 없어서 하나 둘 사라질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이런 미래는 상상도 못했던 거 같다.


영서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5학년이 되던 해, 다시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고, 삼X국민학교는 1986년 세계적인 행사 개막식에 참여할 꼭두각시 공연 준비로 분주했다. 매일 운동장에 나가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전통음악에 발을 맞췄다.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지는 발걸음과 구령 소리가 운동장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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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번을 맡아 교실을 청소하거나, 횡단보도 앞에서 교통정리를 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시절 너의 사진들이 아직 남아 있어 더욱 선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졸업반이던 6학년의 일들은 더욱 생생했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를 했지만, 다른 국민학교로 전학을 간 것은 동생 민혁이만 이었다. 다행히 민혁이는 거기서 더이상 전학을 안가고 졸업할 수 있었으니 네가 겪은 외로움보다 민혁이의 외로움은 조금 덜 했으리라.


너는 6학년 2학기부터는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다. 키가 컸던 넌 그 시절 어린이 요금을 내면 운전하시는 아저씨가 화를 내서 학생증이 없는 국민학생이라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보여줘야 했었다.

"저 국민학생 맞다구요. 아저씨. 보이죠 교과서! 지금 학교 가는 거라구요. 6학년이에요. 6학년." " 이상하다. 아닌거 같은데.. 누가봐도 아가씨인데... "

큰소리로 실랑이를 벌이는 바람에 버스에 탄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기도 했다.

"국민학생이라고?" "어머 키가 엄청 크네." "아저씨 좀 믿어줘요. 국민학생이라잖아요."

그때는 서로서로 아는 사이처럼 참견하는 어른들이 참 많았었지.

중고생이 아닌 대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키가 크고 성숙했던 외모를 가졌었던 채영서는 일명 '노안' 어린이였다.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 것은 꼭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전학 걱정 없이 한 학교에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교회에서도 임원직을 맡으며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노래를 좋아하던 너는 틈만 나면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고, 5학년때부터 애창곡은 박혜성의 '도시의 삐에로' 하물며 교회에서도 이노래를 불렀던 넌. 누가봐도 가수가 꿈인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였지.

친구들과 댄스 모임을 만들어 방과 후 교실에서 춤을 연습하고, 당시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같은 가수들이 TV를 장악하던 시절, 너희는 그 안무를 흉내 내며 웃음소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졸업여행. 장기자랑 무대에 ‘김완선 – 오늘 밤’이 흐르자, 너는 망설임 없이 춤을 췄다.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선생님들마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무대는 이후 중 고등 6년 동안 너를 오락부장 자리에 앉히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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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화려한 순간 뒤에는 코믹한 사건이 있었다. 여행 막바지, 피곤이 몰려왔는지 갑자기 쌍코피가 터졌다. 하얀 체육복 상의에 번진 붉은 자국을 가리지 못한 채, 그대로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이라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날 이후, 너는 ‘쌍코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그 치명적인 사진은 그대로 박제가 되었다. 졸업 후에도 오래도록 그 별명으로 기억되어서 세월이 흐른 뒤,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동창들 만나는 웹사이트가 유행하던 시절, 네 국민학교 6학년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너를 ‘춤 잘 추던 쌍코피’로 기억했다.

그 덕분에 너는 자연스럽게 동창 모임의 짱이 되었고, 졸업여행의 그날은 다시 웃음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때의 그 노안 어린이는 그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어 변하지 않은 외모를 가진 '방부제 인간'이 되었다.

지금 혹시 그대가 또래보다 나이 들어보이는 노안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방부제 인간이 되어 나이가 쉰이 되어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예비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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