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세상에 첫 발을 내딛다.

Episode 1.

by 현서린

1975년 6월 어느 날, 경기도 성남의 작은 2층집에 너의 첫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날 밤은 축복이라 부르기엔 적막하고 고요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너를 품에 안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고 한다. 아마 세상이 너를 위해 잠시 숨을 멈춘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너는 다른 신생아에 비해 덩치가 큰 우량아였는데, 혼자 너를 낳느라 너의 어머니는 온 힘을 쏟으셨다고 한다. 이웃 할머니의 도움으로 탯줄을 자르고, 그 작은 방에서 한 생명을 홀로 맞이하는 일은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힘겨움과 함께, 너의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힘찬 울음이 온 방을 가득 메웠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앞으로 펼쳐질 너의 삶이 얼마나 힘차고 단단할지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 당시 1975년에는 우량아 대회도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건강한 아기를 뽑는 행사였는데, 그 대회에 나갔어도 아마 우승을 하지 않았을까 너의 어릴 적을 회상한 적이 있었다. 그랬으면 아마 분유를 광고하는 모델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넌 순수 모유만 먹고 자란 아이였지만, 말이다.


너의 아버지는 너의 탄생, 그 순간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밖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계를 이어가느라, 너의 탄생을 목격하지도, 환영하지도 못하셨다. 한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경제 불황에 휘청거리던 아버지는 결혼식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 일에 만 매달리셨다. 결국, 너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오직 어머니의 품 안에서 태어났다. 비록 부족함 속에서 시작된 삶이었지만, 그날의 첫울음은 너의 가족에게 희망의 빛을 비춘 찬란한 순간이었다.


채(彩): ‘빛나는 색깔’, ‘다채로움’

영(映): ‘비추다’, ‘빛나다

서(書): ‘글’, ‘이야기’,‘기록’


채영서라는 이름은 “다채로운 색과 빛을 지닌, 자신의 이야기를 써가는 사람”으로 자라라는 뜻의 이름으로 어머니가 지어주신 너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온갖 색깔의 희망이 번져나갔을 것이다.


네가 태어난 다음 해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비로서 결혼식을 올리실 수 있었다. 막내이모의 등에 업힌 넌, 이모와 11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니, 이후로도 둘 사이는 성장하는 동안 자매처럼 만나기만 하면 피어나는 웃음이 많아 늦게 까지 떠들다 종종 같이 혼나기도 했었다.

5남매의 첫째였던 어머니는 전라도 화순 출신이지만,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20대 초반 부산에서 일을 하던중 7남매의 여섯째였던 아버지를 만나셨다.

어머니가 다루던 요꼬*짜는 고장난 기계를 고쳐주신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고,

1976년 5월 비로서 혼인서약을 한 정식 부부가 되셨다. 5남매(3남2녀)로 3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 그리고 부모님 모두가 살아계셨던 어머니의 가족과 달리 아버지의 형제는 6.25전쟁으로 4분이 부친과 함께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모친인 할머니와 첫째아들인 큰 아버지, 여섯째인 너의 아버지, 막내딸인 고모만이 살아남으셨다고 한다.

앞으로 수많은 너의 이야기속에 등장할지도 모를 에피소드속 수많은 인물들은 너를 기억의 저편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할 것이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구든 스치는 인연이든.. 너 채영서에겐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한 해가 또 지나고, 그렇게 너는 그 작은 집에서 세월을 맞으며 자랐다. 세 살쯤 되던 해엔, 너는 1층에 살던 주인집에서 자주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귀가하여 2층으로 올라가자고 하면 집으로 올라가기가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네 성격이 그랬다.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야 했고, 싫은 건 절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날도 “나 여기서 잘 거야. 안 올라갈 거야!”라고 엉덩이를 쭉 뺀 채, 떼를 쓰는 너를 보고 곤란해하시던 어머니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널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팔을 잡았는데, 그만 팔이 빠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너를 병원으로 데려가셨고, 그날의 사건은 단순히 고집불통인 너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지만, 너의 성격이 얼마나 완고하고 고집스러운지 모두가 깨달았던 날이었다. 병원에서 서럽게 울던 네가 빠진 팔이 맞춰지고 바로 울음을 그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네 고집을 체감하셨을지도 모른다. 너는 하고 싶은 건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은 건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날의 사건은 어쩌면 네 인생의 단단한 성격을 드러내는 작은 기지개였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순간들 속에서 너는 단단히 자라났다. 어머니는 네 고집을 힘겨워 했지만, 아마 속으로는 네가 세상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어린 너의 모습은 어머니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근심을 안겼지만, 무엇보다 희망과 사랑을 가득 안겨주었다. 그런 너의 성장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할지 몰라도, 가족에게는 찬란히 빛나는 이야기가 되어 간직되었다.

채영서, 너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