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김영하 - 여행의 이유
10. 새벽의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새벽의 시간을 산다. 일상에 나 자신을 팔기 위해 다가올 피로를 무릅쓰고 그 시간을 산다. 적막에서 피어나는 여행의 서막. 새벽의 고요에 나를 맡길 때, 모든 감각들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각자 나름의 여행법이 있겠지만, 나는 보통 여행 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숙소 주변이나 유명 관광지를 새벽에 혼자 걷곤 했다. 리스본의 호스텔에서 혼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난 후 새벽 5시부터 무턱대고 주변을 걸었다. 영화 속에 있던 거리, 분위기, 잔상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발걸음에 스며들어 몸으로 느껴질 때면 그곳을 잠시나마 온전히 가진 기분이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 카페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청아한 종소리에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해보는. 비 오는 날의 파리 거리를 Lauv - <Paris in the rain>과 함께 활보했을 땐,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에 음표가 붙은 것처럼 분위기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김영하 - <여행의 이유>는 Remember 나 Remind 보다는 Reminiscence라는 동사와 어울리는 책이다. 우리 삶에서 과거의 기억이 그 직후보다도 시간이 지날 때, 더욱 명확해질 수 있는 건 여행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연애의 시간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여행은 시공간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의 연애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그 정의도 이유도 중요하지만 일단 여행을 직접 하는 게 가장 좋다. 인생은 동사니까.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이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데이비드 실즈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 - 리베카 솔닛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중략)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