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9.꼰대가르송, 꼰대들을 위한 진혼곡

by AND ONE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꼰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꼰대처럼 보이기 싫어서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뒤에서 꼰대 찬가를 울부짖는 자들이다. 이런 무기력함을 느낄 때마다 곧장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똥을 싸며 죽음을 생각한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내 인생이 이 똥과 다를 바 없구나 생각하며 물을 내린다.


어떤 이는 물 흘러가는 대로 살라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들은 있고 그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참고 살면 어느새 '적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적응'이라는 단어가 참 무섭다.그들이 겪었던 적응의 과정을 내게도 적용하려는 모습을 볼 때, 작가의 표현처럼 시대는 바뀌었지만 세대는 바뀌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안타깝게도 비극의 시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밑줄독서] 김영민-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