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하면 승리한다는 착각에 관하여

1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존버'이야기

by AND ONE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슘페터의 제자이자 경제학자인 윌리엄스 존버(1900-1989). 그는 자신의 저서《투자 가치 이론》(The Theory of Investment Valu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가치투자를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락하는 것은 최저점을 찍으면 다시 상승하게 되어있다"


1) 존버하면 승리할까?

우리의 인생도 그럴까? 흔히, '존버하면 승리한다'는 표현은 주식 시장에서 많이 쓰인다. 회사에서도 '존버'는 우리의 유일한 외국인 직장동료이기도 한데, 이때는 주로 '승리'라는 단어가 생략된다. "퇴근까지 존버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략에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존재한다. 아니, 확실한 믿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차는 쌓이고 월급은 오른다(아주 조금씩), 이러한 확신은 시간의 퇴적에 비례한다. 이렇게만 보면 얼핏, 존버는 인생의 승리 공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2) 존버의 성패는 인내심이 아니라 시간에 좌우된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흔히들 파도의 오르내림을 우리 인생에 빗대지만 이러한 비유는 과거 시제에만 적절하다. 오히려 현재와 미래를 말할 땐, 밀물과 썰물처럼 수평(X축)의 개념으로 말하는 게 더욱 적절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한 채로 '존버의 승률'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식의 반론은 거부하겠다. 그런 인생 패배자 같은 마인드 앞에선 존버든 존예든 존잘이든 무조건 필패다.)


현재와 미래 시제를 밀물과 썰물에 비유한 이유는 인간의 시간에도 '인력(引力)'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력은 서로 당기는 힘이다. 인간에게 당기는 힘은 곧 책임감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거나 또는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행동을 하는 이유는 책임감이라는 녀석이 원래의 행동과 반대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뤄 평형상태에 있을 때가 바로 '존버' 상태인 것이다. 퇴사하고 싶은 욕망(A)과 부양의 의무(B) 또는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B')이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이루는 묘한 균형 상태는 타인에겐 호수 위에 잔잔히 떠있는 백조와 같지만 본인에겐 끊임없는 발길질로 유지하고 있는 필사적인 행동이다.


3) 존버와 책임감의 상관관계

즉, 존버의 승률은 '인력'에 비례한다. 다시 말하면, 존버는 책임질 게 많은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은 전략이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실력도 쌓으면서 경력을 인정받은 사람(-부터가 존버를 해야만 가능한 개념이지만)-은 존버하면 어느 정도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시 공부 같이 누적된 학습량이 합격 확률을 높이는 경우라면, '제한된 기간 동안' 필사적으로 존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책임질 게 아직 자신의 몸뚱이밖에 없는 경우라면, 존버와 쉽게 친해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존버는 우리의 영혼을 좀먹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 가치를 정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비재무적(청춘, 젊음, 건강 등) 관점에서 우리 삶의 재무제표는 시간에 감가상각 된다. 존버의 핵심은 결국 시간 끌기다.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내린 결정이 인생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인생에서 존버가 반드시 필승 전략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존버'. 그는 산업화 시대와 세대의 성공 법칙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존버는 필승은 아니지만 실패하지 않는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존버하기가 싫다. 개인의 희생을 연료 삼은 인생 공식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존.버.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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