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과 김구의 죽음

14. 기억을 초월하는 기록으로 제74주년 광복절을 기리다

by AND ONE

tvN 대학토론배틀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나의 말과 글로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상태일 때, 진정 이 나라가 독립과 광복을 누리는 국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전부 다 과거의 얘기다. 현재의 나는 회사원에 불과하다. 불특정명사인 회사원이이라는 명칭에선 독립과 광복보다는 대립과 복종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뿐이다.


대학생일 때는 직장인이 되어 경제적 독립을 하고 더욱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대학생보다 못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떠오르진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광복절을 맞아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영화 <봉오동 전투>를 감상하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랄 뿐이다.


1.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 속 인물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떤 인물을 선택할 것
인가? 그로 인해 역사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서술하시오. (대학토론배틀7 예선 참가 질문)


태초에 갈등은 있었다.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그 순간에도 갈등은 있었다. 이승만과 김구 지지세력은 서로 대립했고 결국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다. 1년 후 김구는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김구의 죽음은 왜 지금 현재에도 중요한 것인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문화 특히, 친일독재의 잔재들이 득세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종북몰이를 통해 중요한 어젠다를 소용돌이 속으로 매몰시켰다. 이는 사회에 바람직한 갈등이 아니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갈등을 재양산 하는 역사의 시발점이다. 자신의 기득권 보호 또는 쟁취를 위해서는 가치관의 변절, 매국적 행위 반인륜적 행위도 허용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었다. 악행을 할지라도,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권력을 쟁취하고 부를 누리는 이른바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가치관을 만연하도록 만든 계기 되었다. 친일파를 척결하기 위해 삶을 바친 김구의 죽음은 친일파가 득세하게 만들었다.이는 친일 - 독재 - 수구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기회주의적 부정의가 대한민국 사회에 고착화되도록 만든 원흉이다. '착하게 살거나 바르게 살면 반드시 이용당하고 실패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악해야 하며 남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와 같은 논리를 끊임없이 반복 생산되게 만든 비극이다. 우리의 현재다.


만약 김구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왜곡된 정치 모습이 지금보다는 줄었을 것이다. 국민의 이익결집과 표출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가 적었을 것이다. 지역, 세대, 계층, 이념 갈등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태도로 서로에게 공허한 외침을 일상으로 삼는 정치문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김구가 살아있었다면, 국민과 국가가 지금처럼 유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경제주체들의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노력한만큼 얻을 수 있다는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우리는 경제에 대한 희망과 성장을 위한 동력을 잃었다. 이는 지금의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하거나, 먹고살만한 일'만을 추구하는데는 김구의 죽음이 컸다. 대다수가 원치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걸고 최선을 다한 사람이 결국엔 '실패'한다는 그의 죽음이 너무나 강력한 역사적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 저성장시대일수록 그 피해는 더욱 크다. 통찰력과 장기적 계획을 바탕으로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위의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데 눈 앞의 이익만 쫓고, 이념적 개입에 의한 왜곡된 국가경제시스템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고, 기술이 유출되고, 청년들의 창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 모든 현상들은 '각자도생'의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 문화적으로 '기회주의'가 만연한 사회는 '신뢰'가 결핍되어있다. 신뢰는 특히, 현 시대의 유의미한 단위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시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각자도생'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핵심 능력인 '연대와 협동'을 퇴화시킨다. 인적 네트워크가 와해된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질주의가 더욱 팽배해지도록 만들었다. 김구가 살아있었다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또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들과 대의를 위해 타협하려 노력하는 문화가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응당 돕고자 하는 사회였을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의 변증법적 발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여, 우리 사회는 상호호혜적인 사회, 같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다름을 포용할 줄 하는 사회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김구의 죽음은 독립과 광복을 바랐던 대한민국의 죽음이었고 현재진행형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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