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 강릉을 부르는 여름 이야기(下)

12. 한여름밤의 공기가 가을처럼 물들 때

by AND ONE

밝음과 태양을 뜻하는 강릉의 순우리말 하슬라, 아침해 뜨는 동해에는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붉은 태양과 푸른 파도가 공존한다. 공존이 반드시 균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한여름의 강릉은 태양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한 젊은이들의 복사열로 관광객들을 뜨겁게 맞이한다. 다만, 혼자 온 관광객에게 경포의 뜨거움은 따갑기만 하여 군중 속의 고독을 커피 향으로 덮고자 안목 카페거리로 향했다.


308번 버스를 타고 안목해변으로 향하는 도중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던 책방. 오션뷰를 뒤로 하고 다시 걸어서 이 책방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감상용 바다보다는 생각의 바다에 잠기고 싶어서였을까. 안목을 키우는 공간, 안목책방의 분위기는 청춘남녀들이 젊음을 불태우고 있는 바닷가 백사장보다 핫하거나 힙하지는 않았지만, 책방 사장님과 단둘이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지나온 인생과 지나갈 인생의 갈림길들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장면은 내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았다.
어쩌면 혼자 여행을 하면서 항상 기대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왜 혼자 여행을 다녀?'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하는 대답.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의외성을 기대하기 때문이야"

혼자 여행을 다니면 계획에 구애받지 않는다. 주변 사람을 배려할 필요도 없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의 일상은 그 본능적 속성 때문에 일정에 쫓기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거나 하는 척)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기에 온전한 나로서 살기 어렵다. 홀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외로움에 휘둘리지 않는 적절한 고독과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홀로움을 회복하는 것과 같다.


본능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을 꺼내 들었다. '낭만'과 '일상'이 갖는 대립감은 '일상'과 '여행'이 지닌 부조화만큼 강렬히 다가왔다. 낭만적 일상을 꿈꾸는 사랑의 결론은 흔히 결혼으로 귀결되지만, 작가는 결혼을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처럼 모순적이지만 현실적인 계약 관계의 형태는 결혼에만 그치지 않는다. 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의 정신과 육체를 갈아 넣겠다는 근로계약은 '갑'과 '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다시 그 비극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여행에서 느꼈던 즐겁고, 새롭고 때로는 지루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마저 소중했던 시간들을 붙잡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우리의 여행에 독서와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는 같은 것을 새롭게 보고 다른 것도 나만의 방식으로 느끼기 위함이다. 여기에 맥주가 주는 시원함과 취기 오른 감성까지 더해진다면, 여행은 파도처럼 우리에게 스며들 것이다.


#20190801-20190803, 강릉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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