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결혼, 일상에 한 획을 긋는 연애에서 일생을 함께할 영혼의 만남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흔히,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을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 그렇게 우리는 보통 몇 번의 연애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더욱 갈구하며 종국에는 일상의 시간을 서로의 향기로 채워나가 일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연애의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서로의 공간이 되는 과정이 곧 결혼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세계에 누군가를 허용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혼란은 곧 '낭만적 연애'에서 '일상의 결혼'으로 바뀜을 알리는 신호다. 일상을 일생으로 바꾸기 위한 한 획을 긋는 그 과정에는 수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형마트와 아울렛, 백화점을 거닐고 있는 많은 부부와 가족의 모습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낀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낭만적인 상상을 사랑으로 둔갑시켜 상대방의 맹목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무례함을 범하는 것이다.
相敬永愛(상경영애), 서로를 존중하고 오랫동안 사랑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필자가 누군가와의 '진지한 만남'을 결심할 때 기준으로 삼는 말이다. 그 진지함으로 만남을 시작해도 관계의 결정짓는 결혼이라는 의식은 여전히 두렵고 아득하기만 하다. 결혼이란 일상에 한 획을 그어 일생을 같이하는 영혼의 파트너를 찾는 일인데, 도대체 어떻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겠는가? 소중한 사람과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와 같이 질문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일독을 권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한편,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