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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Sep 08. 2019

앵무새는 어떻게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16,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넵무새와 군무새 이야기

2013년 광고계의 새 지평을 열었던 현대카드의 MC 옆길로새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발췌)

내 삶의 목표는 영웅이야 난세
세상 모두 쫓아가도 쫓지 않아 절대
틈새를 노려 무는 한 마리의 늑대
뻔한 길은 싫어 길만들 지 모세

한 번쯤은 옆길로 새 (같이 새)
뻔한 인생 옆길로 새 (같이 새)
가던 길을 한번 부수면 (같이 새)
DIFFERENT 오늘 만세
I MAKE BREAK MAKE

1. 옆길로새, 광고에만 서식했던 돌연변이 앵무새 이야기

MC 옆길로새는 앵무새다. 우리는 흔히 앵무새를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억압받는 존재'로 생각했다. 그래서 랩 하는 앵무새가 반사회적인(?) 가사를 내뱉었을 때, 수많은 앵무새들은 재미를 넘어 쾌감을 느끼고,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다시 무기력하게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렇게 유명한 소설의 제목처럼 -  <앵무새 죽이기> - 우리는 옆길로 새지 못하고 그렇다고 당당히 맞서지 못한 채 자신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의 나는 앵무새다. 서식지에 따라 새의 종(種)이 다르듯, 나도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며 앵무새로서 존재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선배들의 부탁 아닌 지시에 거절하지 못하는 넵무새로서, 사회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역차별을 받는 20대 후반의 군무새로서 말이다.


2. 넵무새, 회사에 서식하는 앵무새 이야기

넵무새, 직장 상사들이 하는 말에 '넵'으로만 답하는 사회초년생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당신이 현재 직장인이라면, 그 직장에는 최소한 1명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넵무새는 사내 먹이사슬 최하층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이유는 대학생이 취업하고 싶고, 수평적 근무환경으로 유명한 회사에 종사하는 - 넵무새인 본인이 곧 증거이기 때문이다.


넵무새는 스스로 넵무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상명하복 문법과 불합리한 관행들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앵무새들을 보며 분노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넵무새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힘이 없었기에 힘을 아껴야 했다. 시키는 일을 시키는 대로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 그렇게 넵무새는 무기력해져 가는 것이다.  


3. 군무새, 남녀불평등 사회에 서식하는 앵무새 이야기

이런 (남자) 넵무새도 기력을 되찾을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다. 그때, 남자들은 군무새가 된다. 군무새는 양성평등 이슈에서 여성의 권익 옹호를 주장하는 측에서 '병역의무의 불평등을 핵심 근거로 삼는 상대방'을 (비하의 어조로)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다.


왜 이런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건, 반대편의 집단과 세력이 '비하와 조롱' 말고 '병역 의무의 불평등'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넵무새와 군무새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넵무새 경우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직급'과 '연차'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을 바라는 사람들이 군무새의 멸종을 원하다면,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병역 의무의 불평등'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군무새'라고 상대방을 비하하는 집단이 역설적으로 앵무새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앵무새가 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다른 앵무새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앵무새가 우리 말을 따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람의 탈을 쓴 채 앵무새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앵무새는 무색무취하다. 자신만의 색깔이 없고 향기가 없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 앵무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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