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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Sep 28. 2019

가을의 무궁화호, 목포를 기억하는 법(1)

18. 여름이 남아 가을의 바람을 숨길 때

# 2019.09.27 - 23시 10분, 목포행 제1411호 열차 5호차 28번 좌석


종착역을 여행지로 삼는다는 것, 그건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내 삶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 것인지, 현재와 같은 삶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생각하기엔 때론 이곳과 저곳을 잇는 공간의 틈이 필요하다. 다른 생각이 다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일상의 공간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시간에 '틈'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시차로 인해 그 끝을 알기 어렵다고 할 때, 때론 공간과 공간 사이의 거리가 시간의 거리를 채움으로써 보이지 않는 해답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상의 공간이 아닌 일상에서 멀어질 때, 우린 역설적으로 다시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다.


# 2019.09.28 - 06시 00분, 목포역에서 출발한 60번 버스


용산發 목포행 야간열차는 4시 30분에 그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벽의 달빛과 아침의 햇빛 사이, 노적봉과 유달산의  동틀 녘에 누가 있을까 싶지만 형형색색의 등산복 부대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급히 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언제나 그렇듯,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은 처음엔 낭만적일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 수 없는 무기력과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행선지 없이 버스에 몸을 맡기곤 했다. 새벽 6시, 60번 버스에 올라타 2시간짜리 나만의 시티 투어를 끝내고 나니, 어느덧 태양도 그리고 내 마음도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뀌는 건 우리 자신일 뿐. 순간의 불안과 답답함도 잠시, 다시 묘한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화보다는 시간의 누적이 만든 퇴적이 그곳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가 되어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영산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하여 붙여진 그 이름 목포, 이곳에서 나는 또 어떤 새로운 감정과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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