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하늘을 따르는 도시 이야기 (1)

28. 바람을 따르다, 방황이 허락되는 방향으로

by AND ONE
"너무도 사랑한 것이 때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한다.
우리가 남모르게 흘렸던 눈물의 의미도 그러하리라.
함께했던 시간의 막이 내리고 많은 날들이 지난 후에도
서로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20.05.01, 13시 10분 용산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무궁화호는 어느덧 순천역에 도착했다.


하늘을 따르는 도시, 순천(順天). 하늘을 따른다는 것은 필시 삶을 둘러싼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뜻이리라. 그렇기에 순천 여행법은 간단할 수밖에 없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천을 따라 자연과 호흡하면 된다. 자전거 페달을 밞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나의 인생도 이처럼 간단히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만 어쩌겠는가? 두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도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이 필요할 것이리라.


그렇게 팔마대교에서 10km 정도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순천만 자연습지. 3년 전, 순천만 갈대밭에 새겨놓은 다짐이 오월의 초록빛 바다가 되어 내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나는 내 세상에 어디쯤 와 있는 것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바람은 그 자체로 소리 낼 수 없다. 무언가를 스쳐 지나가야만 그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바람의 본질은 인연(因緣)이다. 모든 것은 인과 연이 합하여 생기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인생은 인과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그 순간 다시 바람이 분다. 인생은 기차여행이라는 믿음으로 인연이라는 인과법칙에 여행이라는 우연을 아로새긴다.


순천만의 갈대가 서걱거린다. 갈대를 닮은 인생의 행선지는 바람과 같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한다. 갈대 바람엔 또 어떤 희망과 고민들이 수놓아졌을까. 바람을 맞으며 바람직함을 생각한다.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직 내겐 바람직하지 않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확실한 개인의 질서를 수립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새로운 생각에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진다. 여행이란 곧 방황할 수 있는 여유 아닐까? 내가 걸어온 시간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계속 방황할 것이다. 방황이 허락되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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