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속절없는 세월도 초록이었으면(1)
33.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바람은 물에 자신을 새겨 넣고
그것을 물결이라 우겼다.
나는 당신을 새겨놓고
그것으로 나라고 우겼다.
- 나의 외로움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中 -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에게 여름휴가란 보통 그런 것이다. 꽃피는 봄이 지나 초록이 올라오는 계절의 한가운데서,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구나' 매번 뒤늦게 깨달으며 시간을 붙잡아 보려는 것.
속초의 밤바다 앞에서는 더욱 속수무책이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 앞에서 깨닫는 건 같이 일렁거리고 있다는 사실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현재의 부재에 과거를 떠올리며 미래를 생각하는 모순도 부서지는 파도의 거품처럼 사라지기를.
언제 그랬냐는 듯 속초의 아침 바다 위에는 황금빛 비늘들이 춤을 추는 중이다. 리스본에서도 그랬었지. 23번 트램을 타고 올라가 빨간 지붕의 가옥들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바다 앞에서 파랑의 자유를 꿈꿨다. 자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 자유라는 가능성을 다시 사유한다. 혼자인 게 편했고 혼자여도 즐거울 수 있었지만 혼자라서 행복하지는 않을 때, 자유는 어떤 의미인지를.
서울에서 차로 3시간이면 너를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잊는 것도 너를 생각하는 일이니까. 잊기 위해 있어 보기로 했다. 같은 공간을 다른 기억으로 채우며, 사람이 장소이고 장소가 곧 사람임을 생각한다. 여행기를 쓸 때 둘 중 하나만 쓴 적은 없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