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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un 26. 2021

BREEZY PHILOSOPHY-여름밤으로부터의 사색

산들바람을 타고 누군가의 바람은 오늘도 흐른다

행복은 손에 쥐려고 하면 잡히지 않아

이번 주도 끝났다. 그리고 이번 주가 시작되었다. 근무와 주말 사이에는 여름밤을 환하게 비추는 별들의 무리들만큼이나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는 무리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행복은 이미 경제화된 개념이기에 '행복'을 느끼는 행위 자체도 '경제력 있는' 사람의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의 행복은 '여유'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감정 같달까?


그놈의 여유, 참 가져 보고자 노력했다. 맞다. 모순이다. 여유조차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방향과 방법이 틀렸는지 이번 주 내내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필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죽기로 결심'하겠다는 비장함을 곁에 두기에는 나란 놈은 아직 먹고살만하다고 느끼나 보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아 '필사(必死) 대신 감정의 필사(筆寫)를 하기로 했다나.


이유가 궁금했다. 내게  여유가 생기지 않는 이유. 넉넉하게 남아있는 상태가 여유라는데, 그렇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넉넉하지 않거나' 또는 '남아 있지 않거나' 아님 '넉넉하게 남지 않은' 3가지 상태 중 하나일 것이다.

KNOCK KNOCK.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 봐, 너는 여유라는 그 단어조차 잘게 자르고, 3가지 케이스로 분류하고, 무엇에 해당하는지 굳이 찾으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평생 여유로울 수 없을 거야"

 

그렇다. 나란 놈은 결핍을 느끼면 항상 그것들을 채울 생각만 했다. 모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가진 것도 없다는 생각에 그나마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며 현실과 타협한다. 그렇게 두 손은 꽉 쥔 채로 더 큰 무언가를 바라며 불만만 늘어놓는다. 양쪽 손에 이미 무언가를 다 쥐고 있는데 어찌 새로운 기회를 붙잡을 손이 남아 있겠는가?


이때 얼굴에 촥 감기는 여름밤의 산들바람. 바람도 공기압의 차이로 발생하듯 감정도 그 오르내림이 있을 때, 우리는 이 감정을 직시하고 또 어딘가로 흘려보내며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유 비로소 이유 없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넉넉하게 남아 있지 않아도, 산들바람처럼 시원하고 가볍게, 손가락을 벌려, 마디마디를 흐르는 행복한 바람을 느끼며.

가끔 여름밤의 한강에서는 맥주캔을 비우는 것보다 각자의 breezy philosophy를 바람과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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