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Oct 01. 2021

2020년대에는 20대가 가장 죽고 싶다

20대가 스스로의 젊음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죽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라는 말을
화면에 보이는 숫자들을 향해 외쳤다.
감히 그들의 사정이 어땠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숫자들에 나는 흥분한다. 며칠 전 발표된 인구통계 조사에는 2019년 기준 대한민국 자살률이 공개되었다. 하루 평균 36명이 목숨을 끊는다. 그 숫자가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이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자란 0.5도가 우리가 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각도이고, 남녀가 서로를 갈라치고 혐오하고, 그런 문화를 조장해 이득을 얻는 언론계, 문화계 - 그곳에 포진한 수많은 이념과 정치적 구호로 뭉친 '그들'이 평범한 사람인척 연기하고 있는 그 정도의 각도일 것이다.


너무 감상적이고 편협하고 이념적이고 젠더 갈등을 조장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그렇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이번에 발표된 통계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10대 남성, 20대 남성, 그리고 2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


서울시는 산하 조직으로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살예방센터에서는 '시스터즈 키퍼스'라는 여성을 위한 조직이 별도 신설되어 있다. 20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어 2020년부터 오로지 여성을 위해서만  예산이 쓰이는 곳이다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는 것조차 버겁지만) 어찌 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서울시에서는 20 남성의 자살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여성의 그것보다 말이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성별은 상호 배타적이다.


이렇게 쓰면 누군가 필자에게 '여성 혐오'라는 선택하기 쉽고, 선동에 최적화된 프레임을 씌우며 이분법적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따라 마음은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성별로서의 여성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 죽음을 해석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스며드는 연기처럼.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우리가 처한 2020년대의 비극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뿐이다.  비극에 극한의 이성 혐오가 더해져 삶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시점에서, 역설적으로 20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변화시킬  있는  오직 이성을 향한 태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20대는 취업이 힘들다. 필자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대기업을 들어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순수 대졸자들의 합격률이 지금 내리고 있는 비처럼 우수수 떨어진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나아질까?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에 따른 비대면 근로환경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는 대한민국 경제 전반의 고용유발계수를 낮출 것이다. 미취업에 따른 경제난 그리고 그에 따른 자살은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기본소득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초수급 생활자들의 부정수급 사례들을 보면 성실히 일하고, 원천징수로 돈부터 떼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경제가 나아진다고 한들 취업은 힘들다.


20 남자는 억울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586세대의 모든 과오와 불합리가  세대 거쳐 쓰나미처럼 우리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20 여자도 억울하다. 실제 피해를  사람들은 일부 '무고' '허위', '가식'으로 무장한 세력으로 인해 됨됨이를 의심받는다. 혐오를 이용하는 세력은 따로 있는데, 가장 불쌍한 이대남 vs 이대녀 구도에서 서로는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이 없는 곳엔 생명력이 없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성 교제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20 남녀 모두의 자살률이 늘어나고 있는 역사적인 비극의 순간에서 여러분들은 직무 능력뿐만 아니라 사랑의 능력도 길러야 한다.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취업이나 시험 준비로 이성을  만난다는  변명이   없다. 공무원이 되든, 대기업을 가든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박한 현실을 버텨내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곁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아직 없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지금 내리는  비는 누구를 위하여 울고 있는가. 젊음의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무명의 목숨들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왜이렇게 말이 많아지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문경새재는 얼마나 굽어야 나를 굽어살펴 줄 것이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