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밀번호 586

고의적 자의로 자행된 51대 49 선택에 관하여

by AND ONE
20대는 죽었다.
스스로.
'고의적 자해'로 표기되는
자살의 또 다른 이름은
51 그리고 54.

2019년을 기점으로 20대 청년들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의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통계청. 2018-2020년)

2019년엔 20대 청년의 사망은 전체 원인 중 '자살'이 51%를 차지했으며, 2020년엔 3% 증가하여 54%를 기록했다. 그렇다. 이 수치가 50%가 넘어간 시점에서 이 글은 기록되어야만 했다. (이 글은 철저히 90년대생 남자의 입장의 쓴 것이니, 글에서 객관성을 바라는 분이 계신다면 뒤로 가기 누르시면 되겠다.)

출처. 연도별 사망원인통계

20대의 '고의적 자해'의 핵심 원인으로는 (1) 경제적 문제 (2) 취업 문제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취업'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사실 취업이 쉽게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진다. 이는 다시, 청년들이 직면한 경제적 문제가 심화된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청년들은 시작부터 불평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보다 더한 최악의 경우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본인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 취업에만 몰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불행한 90년대 밀레니얼 세대 (1990 ~ 1994)

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이 사회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묶인다.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Z세대와 엮이게 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M도 아니고 Z도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밀레니얼에 속하기에는 1980년대생부터 시작되는 지나친 포괄성과 Z세대에 포함되기에는 포켓몬스터와 국진이빵 스티커를 모으던 아날로그 갬성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생부터 94년생으로 제한한 이유는 앞으로 얘기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던 *핵심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에게는 군 입대-제대-복학의 시기가 '사회초년생 준비생'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일종의 터닝포인트인데, 2016년 기준 09학번(90년생)~ 13학번(94년생) - 제대 후 복학해보니 학교가 전쟁터가 되어버려 내무반 보다 더욱 살벌한 캠퍼스 생활을 했던 비극의 세대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은 회사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586세대와 만나 환장의 콜라보를 이룸으로써 극대화된다.


① 비합리를 참을 수 없는 9094 세대

9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에게는 586세대가 마치 인생의 장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586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회사의 상급 관리자이며, OO노조 머리띠를 둘러메고, 청년들의 미래 기회를 박탈하고, 본인의 잇속만 챙기는 상징과도 같은 세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성공 영광, 민주화 세대라는 도덕적 자아도취는 '민주'와 '정의'로 포함된 단체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좀 먹는 중이다.


특히나 90년대 남성들은 586 아재들의 태도가 매우 이해가 안 될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대학가에 불어닥친 광풍의 페미니즘을 옹호했을 때가 특히 그렇다. 남성 상위 시대의 단물은 모두 즐기며 이제 와서 '시혜적 태도'로 '여성들은 배려의 대상'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20대 남성들을 '사회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함으로써 부당한 특혜를 받는 존재로 규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시혜적 태도'라는 것은 소위 586 운동권(민주당 우상호와 같이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며 룸에서 접대부와 술판을 벌였던(본인 인정) - 기사 참고)이 자신들의 부채의식을 지금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2030 남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89181#home



② 가치관의 혼란을 느껴 흔히 머리가 한 번씩 깨져본 세대

사람마다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지 다를 수 있겠지만, 본인은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관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마케팅과 통계에서 주로 쓰이는 코호트(cohort)라는 개념이 있다. 일정한 기간에 태어나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이 통계상의 인자(因子)를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대한민국의 90년대 청년들은 그들의 성장기와 사회 진출 준비시기에 너무나 큰 사건 등을 겪은 나머지 머리가 여러 번 깨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앞서도 구분했듯, 90년대생을 90~94년대생으로 한정한 이유는 2016년 10월부터 시작되어 2017년에 종료되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이 확정된 2017년 5월까지 '취준생' 신분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취준생은 해당 시기에 다음과 같은 양가적 감정을 겪어봤을 가능성이 높다.

1)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며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박근혜-최순실에 부정재산 형성에 일조했다니, 재벌 해체가 필요할 것 같아"
2) 종각역 부근 스터디룸에서
"삼성님, 부디 자소서 통과 후 GSAT 통과에 원데이 면접까지 합격시켜 주소서"

이러한 자기모순을 겪은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 초년생이거나 또는 아직도 취업을 준비 중일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문재인 정권을 5년째 겪고 있다. 무능력한 정부는 언제나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그 도덕성 또한 내로남불의 전형인 조국-조민 사태를 겪으며 가치관에 혼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방송인 김제동이 헌법 전문가를 자청하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외칠 때, 이에 호응하게 되는 순간 2030세대의 일자리는 더욱더 없어지는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공무원 철밥통 조직에서 사회 기득권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운이 좋은 586세대들은 '베이비부머'라는 인구통계학적 특징과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시대착오적 확신과 아집으로 비참한 현실에서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어른이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20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③ 코딩을 배우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세대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 요즘 개발자들 연봉이 부르는 게 값이고, 너네 같은 젊은애들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이렇게 불평불만 가득한지 모르겠다"라고.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9094세대들에게는 취업 준비하던 당시 삼성에서 지원하는 SW 아카데미 경력이 있는 스터디원들을 조금씩 볼 수 있었거나, '멋쟁이사자처럼'과 같은 사이트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소위 깨어있는 친구들이 조금 있었을 뿐이지, 지금처럼 멀티캠퍼스에서 대규모로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그것이 뉴스에 나오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실 9094세대가 늦었다고 생각한 이유는 본인들이 20년 동안 믿어왔던 '성공'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진정한 승자다!) 고작 1~2년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의 관점에서는 2학년과 3학년이, 3학년과 4학년이, 4학년과 졸업유예생, 졸업유예생과 졸업 후 취준생이라는 신분 상태가 마치 사회에서의 20대와 30대, 30대와 40대, 40대와 50대의 차이와 같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역설적으로 그들의 부모세대와 동일하게 수능 잘 보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는 것이었다. 대학까지는 들어맞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학교명이 적힌 과잠을 입고 다니거나, 미팅에 나가서 우쭐하거나, 고향에 내려갔는데 서울에 있는 좋은 4년제 대학교 나왔다고 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을 테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취업을 앞두고 기존에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는 코딩과 프로그래밍은 선뜻 나서기 어려운 분야였을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잘해왔던 '제한된 시간 내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여 올바른 정답 찾기'를 통해 바늘구멍 뚫기 수준의 대기업/공기업 대졸자 사무직을 위해 도서관, 독서실, 카페 등에서 공부를 해보지만 합격은 언제나 어렵다.


물론, 운이 좋게 합격한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회사에서 꼭 마주칠 수 있는 무능력하지만, 시대의 운을 타고나, 연차는 높고 연봉은 본인보다 2배 수준이지만, 생산력은 1/2도 될까 한 사람들이 꼭 어딘가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비율이 높을수록 그 회사는 미래와 비전이 없고, 내부 조직이 정체되어 있으며, (대놓고는 못하지만) 퇴근 후 술자리에 여전히 연공서열이 중요하다고 일장연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렵게 공무원 합격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자살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위에서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만 쓰면 586세대에 속한 독자분께서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시리라 생각한다. 모든 586이 다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마나한 말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윤석열(60년생), 안철수(62년생), 이재명(64년생)도 모두 586인데 제 각각인 것처럼 말이다. 2030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세대도 586이지만, 결국 살릴 수 있는 것도 586이다. 586이여, 부디 젊음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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