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Jul 26. 2022

캘리포니아의 여름 바람은 별처럼 쏟아지는 파도와 같아서

PCH - PACIFIC COAST HIGHWAY TO SOMEWHERE


여름은 한창인데
나의 여름 바람은 희미해져 간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똑같은 조명과 배치, 일상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유일하게 책 만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변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스스로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야만 하는 의무감은 언제나 캘리포니아를 밝게 비추는 태양처럼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떤 가능성을 믿고, 그 가능성이 좋든 싫든 실재하는 변화로 다가왔던 순간에는 항상 무언가를 얻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잃기도 했다. "Things to come and go"


[샌프란시스코 - PCH, Pacific Coast Highway]

1번 국도를 따라 말리부~산타바바라~빅서(big sur)까지 펼쳐지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해안 절벽의 절경 앞에서 많은 생각은 않기로 한다. 다 가져갈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찬 광경은 계속되지만, 이내 비슷한 모습에 무감각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에.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일부는 그곳에 남김으로써, 새로운 여행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았던 좋은 기억들을 갖고 가지 않기로 한다. 끝없이 펼쳐질 것 같았던 1번 국도에도 언젠가는 램프가 나오듯 마디마디 스쳐 지나갔던 태평양을 머금은 바람처럼 내게는 과분했던 행복이 스쳐 지나가야만 하지 않았을까?

[샌프란시스코 - 케이블카와 금문교]

케이블카에 동동 매달려 바람을 맞았던 기억은 타지였기에 느낄 수 있었던 자유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님,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정해진 길로만 갈 수밖에 없는 케이블카는 그 운명에 마치 저항하려는 듯 인간의 힘으로 작동과 멈춤을 반복하며 힘겹게 오르막 길을 오른다.


힘겹다는 표현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높은 텐션의 흑인 기사가 내뱉은 "where are you from?"이라는 흔한 물음에 - '난 어디에 있고 싶을까라는 평생의 질문이 도로 위 교차로처럼, 신호가 정해지지 않은 비보호 좌회전 정지선 앞에서, 도로 곳곳에 가득한 STOP 사인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멈추고, 캘리포니아 선샤인 라이프를 도전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운타운 곳곳에 텐트 치고 살아가는 홈리스의 모습이 내 미래가 되지 않을까 싶어 한 여름밤의 꿈으로 남겨 본다.


해질녘 어슴푸레 비치는 희미한 빛과 함께 산란하는 안개를 배경 삼은 금문교의 첫인상은 녹이 슨 골드 러시의 역사처럼, 기대만큼 화려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양이 제자리를 내어주고 조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순간, 골든게이트브릿지는 그 이름처럼 붉게 타오르며, 가슴속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무엇을 잇고 있는 것일까.  말없이 흘러가던 시간과 시간의 왜곡으로 우리들을 비추는 별빛 아래에서 들었던 음악의 분위기에 취할 뻔했지만,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세찬 바람은 현실로의 복귀를 재촉했다.


[조슈아트리]

바람 소리가 파도처럼 들리고, 별들 사이를 지나가는 비행기마저 별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곳엔 나의 꿈들은 하늘 높이 흔들리며 빛나고 있었다. 달이 태양처럼 빛나는 순간, 별들은 주황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일까,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의 시간은 이미 광년의 단위로 움직이고 있어, 실제로 그곳에 있지 않다는 누군가의 설명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별똥별이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에 잠깐 반짝이고 사라지는 게 우리의 인생은 아닐까 하며 선루프를 연 채로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샌디에이고 선셋 클리프 그리고 산타바바라]

산타바바라 비치를 보고 싶은 일념 하나로 3시간을 달려왔다. 캘리포니아의 바이브를 가득 담은 신발을 벗고 비치타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모습 - 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별 후에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샌디에이고에서 선셋 클리프에서 펼쳐지던 스몰 웨딩마치는 모르는 사람까지 환호하게 만들었다. 브라보를 외치다가 이내 곧  바보라고 소리친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하고. 구름 우산 속에 숨었다가 제자리를 찾으러 나온 선셋처럼, 해는 잠시 구름 뒤에 가려져 빛을 내지 못하는 순간도 있는 것인데,


파도 소리에 부서지는 거품처럼, 모래 속에 스며드는 물거품이 일상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일지라도, 곁에서 때론 은은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햇살과 석양과 노을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되는 건 아닐까?


[헌팅턴비치와 라구나비치]

퇴근 후 가끔씩 찾게 되는 라구나비치와 그리고 헌팅턴비치. 故이어령 선생의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실제 장소를 마음만 먹으면 방문할 수 있다는 게 꿈처럼 느껴진다.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 라는 문장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 라는 행의 의미와 행과 행 사이에 내가 쓰고 싶은 인생이라는 하나의 시를 그곳에 걸어두고 싶다 - 고 헌팅턴비치의 끝없는 파도 앞에서 외쳤다.

사라진 빈 공간에 무언가 다시 채워지겠지만, 언젠가는 잃지 않고도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받아들일 공간의 확장이 필요하고, 여행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넓히는 것일 텐데 왜 항상 이런 순간에 슬픔은 함께하는 것일까?


사랑과 일, 그리고 인생 모든 측면에서 점점 퇴보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화재가 발생해도 스스로 소멸과 소화 그리고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거쳐 대자연으로 소생하는 요세미티처럼, 언젠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상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다짐하며, 미국에서 남은 10일을 정리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에는 인생에서 어떤 보험을 갱신해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