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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Oct 19. 2022

[다시 꺼내본 유언] If I die tomorrow

스스로에게 유언장을 써봤던 2018년의 나를 그리며

한참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지금 회사에서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란 녀석을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SBS 기자 시험을  적이 있었다. 당시 자기소개서 문항 중에는 자신의 묘비명을 쓰는 란이 있었고, 그때까지 글쓰기에 매우 진심이었던 나는 면접 질문이 너무 재밌어서 신나게 썼던 기억이 있다. (역시 회사원에겐 회사  빼고 전부  재밌다.) 아무튼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언제까지 이어나갈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과거에 썼던 글을 보니, 브런치 글을 정기적으로 다시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죽을 때까지 말과 글로 먹고  것이라면, 현재 수준이 아무리 조악한 것일지라도 벼려 나가 보면 언젠가 강철처럼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철학을 담을  있으리라 믿으며.


나는 죽었다. 죽을 때까지도 말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부음 기사를 쓴다.

나는 언제나 몸으로 말하려는 사람이었다. 말은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손은 쉴 틈이 없었다. 그 두 손은 이념이 아니라 신념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행동이 곧 그 사람의 철학이라는 믿음으로 삶과 맞닿아 있는 글을 쓰려 했던 사람.


내게 글쓰기는 덜어내기였다. 쓰면서 잊고자 했다. 잊음으로써 서로 다른 것들을 잇고자 했다. 현실과 유리된 이념은 허황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프레임(frame)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플레임(flame)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울림을 위해서는 스스로 불꽃이 되어야 했다. 불꽃은 겉모습과 달리 속에는 푸른색을 품고 있었다. 나도 불꽃처럼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고자 했다. 내 글에는 현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냉정함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열정을 함께 담고자 했다. 인간을 향한 온정은 모든 기사의 전제와도 같았다.


어떤 이는 내 글이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며 나를 기회주의자로 몰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종의 글은 잡초처럼 퍼져갔다. 생명력을 가진 글은 공감을 먹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 타인의 정의는 결코 내 글을 규정하지 못했다. 자신을 정의롭다고 여기는 순간, 타인을 부정의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본인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았다.


한평생, 기자란 현상을 보고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기사는 속도가 아니라 위도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 진정성은 정의가 아니라 '정리'에서 나왔다. 정리야말로,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혜를 "Order things rightly"로 정의했다. -ism을 잊음으로써, 삶의 우선 순위를 정리하려 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한다. 나는 죽지만 삶은 다시 시작된다. 글은 기억을 초월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부탁이 있다면, 표현노트와 함께 묻히고 싶다.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미 회사를 다니던 상태에서 재미삼아 봤던 필기시험은 당연히 떨어졌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긴지도 언 2년하고도 6개월 정도. 대기업 취업 후 온갖 욕은 다 하면서 약 4년이라는 시간을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회사의 규모와 나의 인생이 결코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우리 팀에서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공황장애로 병가를 쓰신 분이 나왔다. 정신병 걸리면서 일을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살아야 할까 싶다. 쓰다. 인생이 쓰고, 그 쓴맛을 글로 써내려가며, 후회의 글만 쓰고 있는 손가락 마디가 참으로 쓰라리다. (그리고 오늘 새벽 한 노조원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제정신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 그 느낌이 많이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는 것에서 길이 생기리라 믿는다. 없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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