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제대로 그만두고 싶은] ENTJ 좌충우돌 생존기
1화. [회사 그만두는 법]을 읽고 실전 노동법을 생각하다
인사 고충 제도를 이용하는 순간
어쩌면 이 클릭 하나에 또라이로 낙인찍혀
인생은 복잡해지진 않을까?
걱정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회사에서 잘리면 어쩌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 싶었다. 더욱 좋다는 것은 더 높은 연봉이나, 유연한 조직문화, 성장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환경 등 -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 좋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크게 부질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한 조직에서 (화이트 칼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임원의 업무를 보좌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부품이 되어 인생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크게 나쁠 건 없어 보이지만, 나쁠 것 없는 인생 살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나 싶다. 근데 한 가지 웃기는 사실은 "아등바등" 살았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고, 실제로 쟁취한 것은 대기업 직장인 화이트칼라, 그러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에 불평불만 가득한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과로 증명할 수 없는 성취 부족의 사람들은 (본인이 평가한) 삶의 태도에 스스로 심취해 허우적거릴 때가 많다. 그렇다 내 얘기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도 모두 수필이다.
대기업. 그 이름이 주는 안정감 - 은 멀리서 봐야지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다소 일찍 깨달았지만, 그 comfort zone에서 나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인데, 얼마 전 다시 불을 지핀 사건이 있었다. 업무가 바쁜 시즌에 조모상을 당해 경조휴가를 썼다. 업무가 바빴기에 노예 마인드 가득한 나는 새벽 1시까지 손님을 받고 회사 노트북을 켜서 급한 대로 메일 및 팔로우업 요청 메일을 보냈다.
이내 아침이 되었다. 내 팀장은 할머니가 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그 밑에 파트장은 팀장이 찾는다며 급하다고 했다. 이럴 땐 꼭 하나같이 "정말 미안한데~"로 시작한다. 그 위의 실장이나 상무가 아무리 급하게 찾더라도, 팀장이라면 본인의 개인기로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휴가 복귀 후 다른 팀원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만 ~ 사실 너희 팀장이 좋지 않은 얘기를 했다." 어차피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해보라고 했다. "사실 휴가 쓴다고 했을 때, 팀장과 파트장이 따로 회의실에 들어가서 '이거 내가 승인하면 얘 무단결근 되는 거 아니냐, 확 무단결근 시키고 싶다는 걸 들었다"라고 말했다.
평소 직장에서 신조가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일이라는 것은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건 선을 넘었다.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데 증거가 부족했다. 휴가 때 전화하고 문자하고 보이스톡 온 건 기록이 있다. 하지만 나도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녹음 기록이 없다. 다른 동료들이 말해준 반인륜적인 언행도 결국에는 제삼자를 통해서 들은 내용이다. 평소에도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받았던 것들이 많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정기적으로 기록한 자료는 없었다.
전사 차원에서의 인사 시스템을 써볼까 고민한다. 수소문 끝에 대략 파악하기로는 인사고충제도를 활용하면 (1) 외부 인사 컨설팅사에 알림이 간다 (2) 그룹 인사팀으로 알림이 간다 (3) 본부 인사팀으로 알림이 간다 (4) 상무/전무급에게 따로 알림이 간다 - 의 순서로 업무는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다이렉트로 상급자에게 메일을 쓰려다가 지웠다. 지우고 쓰기를 반복한다.
글에 감정이 많이 실린다. 그럴수록 글의 힘이 약해진다. 저항하는 조직원을 지키려 하는 조직은 없다. 비조직적인 성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짐에 따라 회사를 정말로 그만두어야겠다고 느낀다! 느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의 제목은 [회사 그만두는 법]. 대기업 사내 변호사 출신으로 시작한 작가의 글답게 조직 생활의 굴곡진 부분을 잘 드러내며 필요한 법률적 지식과 사례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기 풀어냈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와닿았던 문장을 정리한 것이다. 부디 회사 생활이 힘든 분들께 와닿는 문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뒷담화의 현장에서 회사원들의 일상적인, 깊지도 얕지도 않은 오래된 무력감과 우울을 확인한다.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일할 자유를 갖지 못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의 구속이 시작되는 새로운 일상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권고사직 앞에서) 절대 사직서를 제출하지 마라. 사표 내지 말고 해고를 당하자.
우리는 모두 단독자다. 퇴사자만이 조직을 잊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
사용자가 노동자로부터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근로관계는 소멸한다(민법 제660조)
직장 내 괴롭힘은 일종의 도착적 폭력이다. - 그 폭력이 도착적인 이유는 피해자조차 회사생활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과정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해자들 역시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3년만 밑바닥에서 구르면 순한 양이 되기 마련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언제나 개인적 갈등으로 치환되고 이는 폐쇄적인 회사 조직의 기본적인 문제 해결 전략이기도 하다.
일개 회사원의 일이란 바로 임원의 업무를 보좌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징계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사유, 절차, 양정(형량의 정함)이 적정해야 한다. 단 한 가지라도 하자가 존재한다면, 그 징계는 위법하여 취소되거나 무효가 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을 보면 조직으로서의 회사가 그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화이트칼라의 죽음과 우울증은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해고를 당한 미국 노동자가 그 분노를 외적으로 표시하고 항의를 밖으로 분출한다면 한국의 근로자들은 반대로 그 칼을 조용히 자신에게로 겨누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개인의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며 조직이 부여한 과업을 묵묵히 수행해야만 하는 인간형을 요구한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하면서 산다 - 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포기한다"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직에 기대지 않는 삶을 살아가며 자기 스스로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경우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스스로 겪어 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