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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Nov 28. 2022

[밑줄독서] 김지수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33.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인생에서는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하네.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거야


죽음을 앞둔 이어령의 maybe론을 듣고 말장난 같은 문장을 떠올린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오히려 메멘토 모리의 정신으로 한평생을 마무리한 그는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였고, 평론가와 행정가, 문학인이자 예술가였다. 그는 경계가 없는 사람이자 동시에 본인만의 영역을 구축한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경계였던 사람은 아녔을까 싶다.


노태우 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했을 당시, 필자는 아직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그의 화려한 업적을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으나, 다소 특별한 계기를 통해 작가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이 책을 알게 됐다. 캘리포니아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을 당시 자주 갔었던  헌팅턴비치의 파도를 통해 그를 알게 됐다. 한국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이 헌팅턴비치의 거침없는 파도와 태양에 비치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찬미하지는 않았을까 기대하며 검색해보니,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라는 그의 유고시집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딸을 그리며 고인이 된 그는 헌팅턴비치의 파도 앞에서 울고 있지는 않았을까

미국에 있을 때는 故이어령 선생과 그의 가족사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 알려진 내용으로는 딸 故이민아 씨는 정치인 김한길의 첫 번째 부인이었으며,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이혼했었다고 한다. 당시 이민아 씨는 미국에서 잘 나가는 검사였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순간부터 종교에 귀의하여 결국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심각한 질병이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나 이 또한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남은 생애를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어령 선생은 딸이 종교에 귀의한 이후 그녀를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성에서 영성으로>와 같은 저서를 비롯하여 목숨을 다 하는 순간까지 신을 믿었던 것 같다.


죽음의 방식을 생각한다. 그는 글로써 당시의 우상을 파괴하며 문단에 들어섰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을 거치며 끝내는 죽음을 썼다.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자기보다 더욱 소중했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곳에선 들리기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말하고 쓰고 기록했을 것이다. '자아'를 통과한 글만이 만인의 심장을 울린다는 작가의 맞장구는 작은 죽음의 시간이 모인 병실의 정적을 깨기 적당한 중모리 장단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죽게 되면 화장을 하고 가루가 된 내 몸을 상자에 담아 바다에 띄워달라고. 한평생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짓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제 몸을 갈아 넣은 나의 아버지는 죽어서는 자유롭고 싶다고 했다. 얼마 지나자 않아 한 곳에서만 평생을 지내셨던 할머니는 처음 태어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본인의 어머니가 분명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생명이 끝난 이후에도 어딘가로 간다고 표현했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방식은 죽음을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장례식장에서는 선명하다가도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영혼의 감각은 미세먼지와 함께 하늘을 흐릿하게 덮는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올 한 해를 떨켜 내는 단풍잎의 공중 비행을 바라보며 올 가을에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욱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진다는 고인의 말처럼,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걸 지속하는 거라고, 꿈 깨면 죽는 거라고 외친 그의 인생철학은 11월과 12월이 이음새도 없이 이어진 2022년의 달력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 끝없는 글들을 수놓아 놓고 마지막 인터뷰는 끝났다.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마지막 'END' 마크 대신 꽃봉오리를 하나 꽂아놓을 거라고 했다. 피어 있는 꽃은 시들지만, 꽃봉오리라면 영화의 시작처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을 테니.   


마지막으로,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글을 맺는다.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Meetjul이 되어 만난 문장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 불리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  
(생각이 많으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가벼워진다고요?)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생사의 문제가 낯선 사람들의 공간에서 다뤄지니 안타까워. 공간의 쓰임도 그래. 외국은 교회에 무덤이 있고 공원에 무덤이 있지.    우리는 다들 아파트에 살면서 관 하나 들어오고 나갈 데가 없는 세상이 된 거야.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어. 인간이 그런 존재야.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그게 실존이야. '나는 혼자다'라는 걸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가 통하지 않아. 군중은 남이 이 말하면 이리로 가고, 남이 저 말하면 저리로 가지. 휩쓸려 다녀. 자기가 없으니까 자꾸 변하는 거라네.  
 내가 돈의 주인이 되면 돈은 나의 최고의 협력자고, 하인이 되면 나는 최악의 인간이 되는 걸세.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돌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봄에서 초여름으로 계절은 이음새도 없이 넘어갔다.  
 웃는 사진에는 소리가 들려, 카메라 너머에서 '치즈~'하는 소리. 그게 자기 얼굴인가? 남의 얼굴이지. 싱킹맨thinking man은 웃지 않아.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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