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Dec 29. 2022

서른과 마흔 사이

강릉시 헌화로 금진항에서 서른이 된 후에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이제 뭔가 결정을 내릴 때가 된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새로운 정부 덕분에 내년부터 만 나이로 살게 되어 다시 서른으로 시작하는 나이.
가끔 이렇게 헛되이 보내고 있는 시간을 누군가에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는, 게으르지만 바쁜 척하는 모순의 시간에 오늘을 보내고 있다.


<서른과 마흔 사이>라는 책을 만난 건, 22년 2월 19일 - 강릉의 해안도로를 달리고 싶어 떠난 날. 카페 빨차에서 오후 3시 33분에 만났다. 어딘가를 떠나올 때 우연히 마주친 책이 있으면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2년 12월 29일 오후 7시 33분으로부터 314일 하고도 4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때론 신기하기도 하다.


서른과 마흔 사이 그 초입에서 트렁크를 열고 그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멍하니 봤다. 나이가 좀 먹으니 이제는 자동차로 움직이는 게 익숙해졌다. (자전거로 하루에 100km씩 달리거나 하루에 3만 보 이상 걷는 게 주특기였던 사람이 맞나 싶다) 의자를 접어 트렁크에 내 몸뚱이를 싣고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를 응시했다. 마음을 풀어놓았다. 수평선에 생각을 풀어놓는 행위의 장점이자 단점은 생각의 스케일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어쩌면 우리 인간은 영원을 염원하는 의지로써 영원이라는 추상의 개념을 믿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리고 시도 한 편 읽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 <행복> 中

314일, 10개월 하고도 10일 동안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기도 하였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쓰면서 동시에 사랑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쓰기도 했다.


내년에도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들이 있을 것이지만 마치 영화감독이 된 것처럼 순간의 기억들을 줌인(zoom-in)과 페이드 아웃(fade-out)하며 우리 각자만의 프레임으로 거리조절 할 필요가 있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사람과 돈 사이의 거리, 사람과 사랑 사이의 거리. 그 모든 사이엔 언제나 씁쓸함이 있겠지만 말이다.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
일상을 뒤엎는 전폭적인 모험을 감행하기에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이른 어정쩡한 나이
상대방의 편견을 존중하기 어려운 나이
여행을 통해 온전히 되는 나이
삶이 부여하는 피로에 다소 어려워지는 나이
시절인연의 참뜻을 절절히 느끼게 되는 나이
세상에 대해 기쁜 일보다는 서운할 일이 많은 나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길을 가고, 추억을 잊기 위해 길을 가는 나이
하나가 잘 되면 다른 하나는 잘 안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나이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이제 뭔가 결정을 내릴 때가 된 나이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캐럴 너머 들리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