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Jan 03. 2023

부캐를 만들고 싶은 당신이 필명을 만드는 방법

필명이 행복한데니씨에서 앤드원(AND ONE)이 된 이유

주어진 이름에서 탈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닉네임, 별명은 어떤 대상을 그 대상의 원래 이름을 대신하여 부르는 명칭을 뜻한다. 왜 원래 이름을 대신하여 부르는 명칭이 필요한 것일까? 당연하게도 본인의 현재 이름을 사용하기 싫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지은' 별명/닉네임/필명의 탄생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이름'의 어원을 따져보면, '이름'은 순우리말로 '이름을 짓다'라는 의미인 고어 '잃다'의 명사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이름에서 탈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이 태생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도 성씨를 제외한 이름을 given n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5세기에는 ‘일홈’의 기본형에 해당될 ‘*일하ᆞ다’ 또는 ‘*잃다’와 같은 어형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하ᆞ다, *잃다’와 같은 어형이 15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였을 것이고 그 뜻은 ‘부르다[呼, 稱]’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즉, 필명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의 내가 무언가를 잃고 싶고 이와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담고 싶다는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AND ONE'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농구에는 '앤드원'이라는 용어가 있다. 농구에서는 선수들이 상대 선수의 파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슛동작을 마무리하며, 골을 성공시켰을 때, '추가 자유투 (=AND ONE)'의 기회가 주어진다. 반칙을 당하더라도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골을 성공시키는 (한발 짝 더 나아가는 추가적인 한 뼘의 노력), 그것을 나는 '앤드원 정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곧 필명이 되었다. AND ONE. 직역하자면, 그리고 한번 더 (다시)


앤드원, 그건 한 번 더 해보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반칙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득점까지 달성하고, 추가 자유투 하나를 획득함으로써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농구의 규칙이 삶의 규칙으로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필명에 담았다. 이렇듯 필명에는 비록 내가 아직 희망하는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더라도 염원을 담아야 된다. 언제까지? 영원히 변할 때까지. 영어로는? Fake it till make it.


굳이 닉네임이 없어도 세상 사는데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는 수동적인 정체성인 페르소나의 형태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선 '나를 위한 이름'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본인 스스로 이름을 짓는 것 - 그것이 브랜딩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필명이 '행복한데니씨' 였던 이유

약 5년 전,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가서 행복을 연구했다. 행복은 남녀노소, 사회·경제적 지위 상관없이 누구나 고민하는 일상 문제이자 평생의 철학적 고민거리였기에, 대학 졸업 전 스스로 '행복'에 대한 나만의 이론을 정립하여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스스로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판단력을 갖고 싶었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이야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강했던 필자는 스스로 '단순한 교환학생이 아니라 덴마크의 행복비결을 연구하는 사람이자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싶었다. , 단순히 '행복한' 상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복'  자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갈등할 때마다 미래의 내게 견고한 기준과 관점을 제공하는 사람. 그것이 나의  번째 필명 '행복한데니씨', 영어로는 happinessdansh(행복+덴마크인 - 데니''로서 하나의 인격체를 의미하는 동음이의어의 역할도 있었다)



페르소나가 아닌 '아이덴티티'를 찾는 새로운 여정을 앞두며

덴마크에서의 8개월과 한국에서의 4개월의 시간을 거치며, 1 동안 행복 글쓰기를 했었다. 그리고 5 동안 출판하지 못했다.  이유는 본래의 목적인 '행복'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고, 일개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일상의 철학자를 꿈꿨던 스스로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만큼 환경은 급격히 변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순과 순응의 과정을 치며 다시 쓰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모순처럼 보이는 현실을 글로써 풀어내고 묶어내다 보면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를 찾을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타인에게 비치는 페르소나가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과 마흔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