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우울증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행복은 사치일까

[프롤로그] 행복이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에 다시 쓰는 행복 이야기

by AND ONE
대한민국은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우울감이 팽배하다.
경쟁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흡사 서로 누가 더 불행한지
경쟁을 하는 것만 같다.

대한민국에서 행복은 사치다. 우리 대한민국은 집단 우울증에 빠져버렸다. 세대 막론하고 우울감이 팽배하다. 무기력함과는 다르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지금'이 대한민국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세상은 요지경이고 문제는 참으로 많다.


요즘은 다들 인구 얘기다. 정점을 찍고 앞으로 젊은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데드크로스', 수도권 집중 및 고령화에 따라 지방은 '소멸'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 모두가 소멸위험군 지역에 속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 (고 쓰는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자취를 한다. 물론 서울 사람이 아니었다.)


혹자는 대기업이 지방에 와야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세종시 수도 이전 시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댓글창 곳곳에는 시골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지역 토착민들의 도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법과 악폐습들이 모두 모여 서울공화국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가만 보면 요즘 사람들은 입으로 얘기하지 않고 손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 댓글만 보면 다들 인구도시계획, 보건사회정책 전문가들 되신다. 댓글리케이션(댓글+커뮤니케이션)의 일상화는 모두를 전문가로 만듬과 동시에 모두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아니겠는가. 몇 년 전부터 언론에서는 '출생률'이라는 단어를 많이 밀어주고 있는데 (또는 필자가 그렇게 느끼는데) '낳는다'는 동사에서 생(生)이라는 명사로의 전환은 겉으론 중립적으로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동사'의 부재는 곧 움직임과 행동의 부재이며 이는 곧 책임의 상실과도 같다. 움직이는 않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혹자는 출산이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고 출산을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짓는 행위는 구시대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부터 젠더갈등의 도돌이표의 시작인 남성의 병역의무가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보물인 BTS도 피할 수 없는 남성의 병역 의무를 보며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오빠 잘 갔다 와요'가 아니라 '나는 과연 동일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남자인 필자는 생각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별게 다 논란이고 앵무새처럼 군대 얘기만 반복한다고 하여 생겨난 '군무새'가 아직도 있음을 한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아기를 여성 혼자 낳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당신 말이 맞다. 남녀가 가정을 꾸리는 비율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우여곡절 끝에 가정을 형성하더라도 끝내 1/3 비율로 이혼을 하게 되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출산'인지 '출생'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 (필자가 오바가 심했다.)


단지 필자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 옛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적 호감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그 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예전처럼 돌아가기가 어렵다. 각자에게 불리한 사회적 단면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인간의 본능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생존' 본능이다. 무릇 과거의 남성들은 매력적인 이성에게 구애를 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을 '비이성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생각해 보라. 군대 2년 갔다 오는데 동갑을 만나면 '지불능력' 기준으로는 여자가 더 많이 벌 가능성이 높은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상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이성적인 현상이 수년간 납득 되었던 이유는 생존 본능보다는 생식 본능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뉴노멀' 앞에서는 모두가 정상이 된다. 지갑 사정이 다들 좋지 않으니 각자 계산한다. 선배가 후배 밥 사주는 문화도 많이 줄었으며 복학생 오빠가 예쁜 신입생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간과 쓸개 모두 내주고 하는 일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이런 삭막한 현실을 극복하고 커플이 된 이들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다. '누가 더 돈을 내는지' 애초부터 따지지 않기 위해 커플 통장을 만든다. 위기는 곧 기회랬던가. 서로가 돈을 관리하다 보니 왠지 부부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이별 앞에서 초라한 통장 잔고는 더더욱 처량하기만 하다. 따지는 건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기혼자들에게는 위의 얘기들이 귀엽기만 하다. 바야흐로 1-2년 전 '가즈아' 구호가 만연했던 시기에는 '억'소리 나는 단위의 돈들이 '악'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부부간의 저축과 투자에 대한 가치관 차이는 거주하는 아파트 브랜드의 격차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작고 소중한 아이들 간의 경쟁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저출산/저출생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사회 현상의 모든 문제들이 집약된 형태의 '결과'이며 시제는 슬프게도 미래완료(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행동이 완료되어 있는) will have p.p 정도 되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이버세상에선 오늘도 팩트체크가 한창이다. 서로 다른 진영에서 팩트를 제조하여 팩트리어트 폭격기로 양측을 공격한다. 포탄 위로 피어오르는 불빛은 흡사 축제 분위기다. 오늘도 양쪽을 갈라치기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혐오 비즈니스는 돈이 된다. 돈은 곧 존재의 이유가 된다.


돈을 버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회사에서 연말/연초를 맞아 휴가 계획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갈 데도 없고 연월차 아껴서 돈이나 받아야지"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유유상종이어서 그런가 보다. 이런 게 진정한 '영끌'이 아닌가 싶다. 영혼을 끌어 모으다 보니, 사람으로서의 멋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특히 요즘 대부분의 30대 남자들은 영혼을 끌어 쓰다 보니 여유가 참 없어 보인다. 타인을 챙길 수도 없다. 자기 생존이 최우선인 시대에서 생명 연장의 끈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은 N잡 분신술을 준비한다.


그렇다. 바야흐로 N잡의 시대다. 직업이 다양하면 막 자기실현하는 것 같고 그런가?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자아실현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실은 본업하고 다른 일 준비하느라 하루가 피곤하다. 장기적이고 연속적이지 않으면 전문성은 누적되기 힘들다는 사실에 N잡의 가짓수만큼이나 멘탈은 N가지로 쪼개진다. 일상성과 일회성 사이의 수많은 일들은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는 참으로 명문장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2023년, 행복연구를 시작하고 글쓰기를 마무리했던 시간으로부터 5년 후, 다시 행복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에 몸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는 정말로 행복을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면 자연발생적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망상에 잠긴 존재들을 자신 밖으로 끄집어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그래서 다시 행복을 쓴다. 5년 전에는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생으로서 스스로의 행복을 탐구했다면 이제는 사회의 행복을 위한 고민을 쓸 것이다. 그 여정에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은 매거진 구독을 해주신다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