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행복의 균형을 찾기 위한 뉴발란스 철학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곧 설날이다. 설날은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 '새해에 대한 낯섦' 이라는 의미에서 새해 첫날을 뜻한다 (국가기록원). 새해에 대한 낯섦이 있는 시간. 설날이란 새해가 이미 시작됐지 작심삼일이 익숙한 우리에게 주어지는 두번째 찬스. 이 찬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뉴발란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으면 마치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만 있을 것만 같다.' 웃긴 사실은 아직까지 살면서 뉴발란스 운동화를 단 한 번도 소유한 적이 없다. 그리고 10년 동안이나 필자는 뉴발란스 운동화를 사본 적이 없다. (매장에 간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한 번 당황, 992나 993이라는 숫자 차이에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에 또 당황)
오랫동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한 철학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진심으로 새로운 균형을 찾고 싶고 나의 새로운 균형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미래를 기약하는 그 순간에 '뉴발' 운동화를 신고 같이 뛰어다니고 싶다. (뉴발란스 광고는 아니지만 만약 광고팀이 본다면 카피로 활용해 주시길) 같이 손 잡고 걸으면서 하나-둘-셋 숫자에 맞춰 "N" 마크가 보이게 뛰어다니면 세상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같이 잘 헤쳐나갈 수만 있을 것 같다.
새해가 된 지 3주 만에 설날을 마주하는 시기에 '새로운 균형'을 생각한다. 균형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처럼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서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상태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나도 모르게 나의 균형을 사회적 '평균'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만은 뉴스 기사와 유튜브 영상 그리고 댓글들을 보며 수많은 여론과 트렌드에 휩쓸려서 자기 색깔을 잃는다. 균형은 언제 생기는가? 흔들릴 때야 비로소 보인다. 시계추가 흔들리다가 서서히 중심에서 멈추듯 내가 맞는지 틀린 지 스스로 고민하면서 흔들리는 과정에서야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나의 현재 상황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를테면 취업을 하지 못했다거나 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급격하게 기울어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과거에 자신이 느꼈던 균형감에서 벗어난다고 느낀다면 그건 곧 '새로운 균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기존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기보다는 기울어진 땅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한쪽의 무릎은 덜 굽히는 것과 같은 '적응'의 균형을 의미한다.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균형'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정중동의 상태라고나 할까.
과학적으로도 정지된 물체는 사실 마찰력과 운동에너지의 균형 상태라고 한다면 결국 '가만히' 있는 것은 사실 '가만히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느끼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진 것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도 사실 나만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발버둥 치기 위해 움직였으므로 '상대방과 굳이 비교를 한다면' 나아진 게 없어 보일 수 있다. 오히려 '삶의 질이 후퇴한 것만 같은' 감정만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그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불안한 시기를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최근에 유독 회사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의 얘기를 종종 들으면서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친 직장인들이 짧은 글 속에서 소중한 한 문장을 만나 자신에게 위로와 용기 나아가 생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고 싶다.
휴직의 시기는 삶의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뿌리째 흔들리는 불안이 있더라도
뉴발란스. 밸런스가 아닌 발란스. 밸런스는 뭔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것 같지만 '발란스'라고 하면 약간 빈틈이 있는 느낌이다. 그 빈틈이 새로운 균형의 시작이다. 이 빈틈을 균형으로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설날에 먹는 떡국의 그릇 수보다 더 많이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