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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un 18. 2023

[밑줄독서] 야마구치 슈 <일을 잘한다는 것>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항목별로 나열해 적기를 좋아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 中

일을 잘한다는 것. 그 뜻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집요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은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이라는 관점에서는 그것이 시작되는 것보다 어떻게 끝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란 결국 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일을 대하는 태도와 관념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초년생 시절, 마이크로매니징의 달인 팀장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5년 이상의 시간을 극복하고 임원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집요함은 시간을 초월했습니다. 그분은 시간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시간 속에 깊이 파묻혀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됨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한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일의 흐름을 잡지 못했습니다. 업무를 파악하는 것과 별개로 담당하는 일을 치고 나가며, 핸들링하는 나만의 리듬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일에 추진력을 붙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짐했던 한 가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해보자"

그리고 약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남을 따라 하는 것은 쉽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에 집요함을 갖는다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고민까지 선제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타 부서의 협력이 제때 진행되지 않은 것을 예상하며, 그들이 업무를 할 수밖에 없도록 판을 깔아줘야 했습니다. 부지런해야 했으며, "이것까지 왜 내가?"라는 질문에 "이것부터 일단 내가"라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는 데 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일은 태도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결론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일을 잘한다는 그 감각. 실체가 모호한 그 감각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스스로 일을 잘해야 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일을 잘한다는 그 감각은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이며, 누가 단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되는 것" 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일을 대할 수 있으시길 바라며 아래 밑줄들을 공유해봅니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감각은 키울 수는 없지만 '자라난다'. 감각은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이며 누가 단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고객에게 '이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다. 이 사람이라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효용가치를 찾지 않는다. 개개인에게 의미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선택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데, 단적으로 말해서 문제는 해결하면 할수록 양적 문제에서 질적 문제로 옮겨갑니다.  

요즘 시대는 필요 이상으로 정확성을 요구합니다. 정보의 유통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유통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든 없든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확립한 가치 기준이 없는 사람, 쉽게 말해 교양이 없는 사람은 여러 상황에서 외재적인 정확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됩니다.  

기초교양이란 자신의 가치 기준을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신이 스스로 형성한 가치 기준이 있다는 것.   

평균점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없다.

감각의 사후성, 사후성이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회상하며 새롭게 해석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현상

노력의 결과 또한 마찬가지로 사후적이다.

원래 '경영'이라는 것은 담당이 없는 일이다.  

템플릿이 정해져 있는 분석 조사라는 '작업'은 엄청난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은 잘하지 못해도 일단 작업은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자료로서의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의 유혹'은 무척 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영도 전략도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당히 복잡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니 데이터를 집계해서 평균치나 경향으로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시스템과는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착실히 분업해나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온갖 모순이 최고경영자에게 모이게 됩니다.  

이익(profit) = 지불용의(willingenss to pay) - 비용(cost)  

프로는 일하는 순서가 다르다.  

힘차게 일하던 사람도 점차 직위가 올라가다 보면 운동 에너지가 서서히 위치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일의 동력이 줄어들고 맙니다.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보면 흥미나 관심, 또는 사물에 대한 시야가 편협해지고 일할 때 필요한 감각도 말살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일수록 계층성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한 만큼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가 동기 부여가 되는 거죠.  

일을 못하는 사람은 항목별로 나열해 적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병렬적인 사고의 문제점은 인과 관계의 역학을 고려하지 않는 데 있다. 즉 시간적 깊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병렬적 사고는 일의 감각을 말살합니다. '그래서 목적이 뭔데?' 라는 고찰이 제외되는 것이죠.  

논리는 항상 시간을 짊어지고 있어요. 논리란 어떤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인과관계이므로 거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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