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기행
도대체 제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펜을 잡고 종이와 노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곳의 무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상하이의 고속철 객실 소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취하는 것뿐. 9도짜리 황산 맥주와 함께 삶의 구도자가 되어 본다.
도대체 제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무차별적인 살해와 살인 예고에 나는 지금 중국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내가 미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세상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도감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안돼!"라고 외치고 싶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더 좋은 환경으로, 상급지로 이동에 성공하여 끼리끼리 만나면 그걸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주변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말이다.
술이 좀 올라온다. 술김에 쓴 문장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난 지금 이곳에서 '안전' 하다고 느낀다. 과연 이게 착각일까? 개인 정보 하나만 포기하면 유럽 난민의 패악질과 미국 노숙자들의 행패, 한국 정신병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황산 꼭대기에서도 치안을 유지하는 공안의 존재는 처음과는 달리 묘한 안도감을 준다. 스스로 움츠리며 외국인으로서 책 잡힐 일 하지 말자고 수많은 자기 검열을 하지만 그뿐이다.
"그래, 이렇게라도 해야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고 안전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비교가 가능해지도록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한국이 미친 것은 아닌지,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에 공기처럼 수많은 잠재적 살인마들이 존재할 수 있는 미쳐가는 이 세상 요지경에 말을 잃는다. 그래도 글은 잇는다.
지금 이 모든 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중국인들의 소음에 짜증 내며 인상 쓰던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진다. 그림 같은 강산의 절경 속에서 무더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에어컨 아래 오감자와 황산 맥주 그리고 글쓰기, 주변과 차단될 수 있는 감미로운 노래들까지...
아!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도 불행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극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