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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Aug 17. 2023

상하이 재즈바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밑줄독서]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 이상우, 안은별


기억은 때때로 상상이기 때문에
춤처럼 흔들리고 휘어진다.
- 베를린의 이상우

해외 단기 파견자의 삶은 생각보다 심심하다. 일하고 퇴근하고 저녁 먹으면 잘 시간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이방인의 위치를 즐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나름 직장인이라고 카페 대신 재즈바를 가본다.


 낯선 공간에서 채움과 비움에 관하여 무언가 쓰고 싶었는데 크게 떠오르는 건 없다. 공간, 비어있는 것의 사이...비어나 시킨다.


혼자 바에 앉아 책을 읽는다. 옛날엔 홀로 앉아 낯선 이방인들과 어울리며 노는 것도 즐거웠지만 이젠 낯선 곳에서 낯선 상태로 존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배웠다.


언제부터였을까. 상하이의 나, 다른 공간의 내가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르후스의 나, 어바인의 나, 그때의 나는 3인칭이 된다. MYSELF OF SOMEWHERE = SOMEBODY 공식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타지에서 읽은 책을 통해 문득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작년에 미국에서 만난 이어령의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와 같은 우연처럼.


이곳에 맞는 책을 만날 때면 새로운 시간이 생산되는 기분이 든다. 여기서 생산적으로 살았다 의미는 time-efficient / productive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24시간이라는 동그라미 바깥으로 조금 튀어나온 점같은 것인데, 이러한 점들을 이어가는 게 우리의 인생일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미래에서 뒤돌아 본다고 한다면, 하나의 인생은 점선처럼 보일 것만 같다.


그렇기에 지금 이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삶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겠지. 그 희미함에 기쁨이 있을수도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도 있기에.


이곳 상해에서 보냈던 시간이 교차하며 하나의 고유한 존재가 되어가는 나를 향해 다시 이륙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은 또 어떤 형용사가 어울리는 내가 될 수 있을까?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풍경은 어떨 때는 굉장히 개별적인 듯하지만 막상 붙이면 어디에나 붙는 물질처럼 느껴졌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서로를 지나치기, 이것이 내가 짐작한 이들의 유일한 약속이며, 만나기로 한 장소는 이들이 결코 의지하지 않는 우연이다. - 베를린의 이상우

정작 어둠 속에서 메모를 남기고 싶은 순간에는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영화관을 나왔다. - 도쿄의 안은별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런 순진한 기다림으로 놓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적어도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이 잊어버리기 전에 짧게나마 써 둔다. - 베를린의 이상우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응시하지도 않는, 그러니까 '멀고 가까움'을 아예 넘어서 있는 존재들은 우리에게 이방인이 아니다.이방인은 오히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서 이방성, 즉 '멀고 가까움'의 문제, 그 긴장의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인 것이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기울어진 경사를 기어서라도 올라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말은 때때로 깨진 항아리다. 정성스럽게 복원할수록 공허하게 들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많은 말들이 사라진다. - 베를린의 이상우

세상에 이런 춤을 추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하는 일종의 취기가 올라온다. - 도쿄의 안은별

그러니까 추후 어떤 장면이 기억에 어떤 형태로 재편집되어 나게 될지 현재 시점에서는 예측할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가끔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데 이는 아무래도 나의 타임라인에서 사건으로 일컬을 만한 중요한 일들,  당시에는 인상 깊어서 혹은 어느 시기의 처음이나 마지막을 가르지는 지점이라 선명하게 지속될  같은 날들이 지금 와서는 흔적도 없는 대신 일상의 평범한 부분들이  자리를  채운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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