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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ul 31. 2024

문제를 풀지 않고 품고 사는 법을 생각하다 쓰지 못했다

다들 미쳐있지만 제정신인척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경쟁의 철학 때문에 오염되는 것은 일만이 아니다.
여가도 마찬가지로 오염된다.
조용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여가는 권태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여가의 경우에도 끝없는 가속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 종착점은 마약 복용과 탈진 상태가 될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 [행복의 정복]


정신을 잠시 잃고 싶다. 이 세상의 일들에 주의 집중하다 보면 인류애를 상실한 일들에 실망을, 나 자신에 침전하다 보면 이상향과 괴리가 큰 현실의 모습에 자괴감을. 개인이 하나의 서브젝트가 아닌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인생의 슬픈 운명. 더욱 슬픈 사실은 이 운명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


출퇴근길에는 유독 이 세상이 미쳐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으로 괴롭다.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데 정신을 놓아야만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머릿속을 풀고 싶은데, 모두 푸는 건 불가능하여 그냥 그 상태로 정지하고 싶은 마음 - 이 책을 읽게 만든다.


세상을 깊게 탐구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반대의 책을 읽는다. 사람들은 책에 이끌린다고 하는데, 요즘 내 독서를 행하게 만드는 힘은 장력이다. 끌어당겨짐으로 바닥 위로 고꾸라지려는 나를 붙잡는다.


1. 쓰레기 같은 책이 쏟아질 때

 - 그 어느 때보다 책 출판이 쉬워진 시대, 나처럼 일기 같은 글을 써도 브런치 플랫폼에서는 전파 낭비가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로 포장될 수 있는 시대. 너무나 쉽게 작성하고 publishing 할 수 있게 되니 아무도 punish 하지 못한다.


- 쓰레기 같은 글에 욕을 할 수가 없다.  누가 읽으라고 강요했는가.  하지만 분리수거가 되지 않자, 양산형 에세이 작가, 챗지피티에 원고 작성 부탁을 하거나 번역을 돌린 후 원서를 소개하는 작태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양이 늘어난 만큼 비판력도 나날이 증가 상태다. (쓰면서도 이 글이 쓰레기와 차이점이 뭔지 명확히 얘기하지 못하겠다)


- 심각한 뇌손상과 심정지 상태. 사유를 하지 못하는 사유는 백만 스물한 가지쯤 되려나. 움직이는 건 오직 손가락뿐. 사유를 드러내는 방법에는 어떠한 격조와 품위와 지켜야 될 선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2. 인생에서 사랑이 사라진 것처럼 느낄 때

- 에바 일루즈와 한병철을 찾는다. 사회학자와 철학자의 문장은 심리학자의 그것과 결이 다르다.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과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끝나나. 저 멀리 철학자, 사회학자와 같은 전문가를 찾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사랑이 없는 인생에서 오로지 돈만이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길을 잃는다.


- 잠시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소유하려고 하고, 소유하지 못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데이트 폭력 뉴스를 참으로 많이 접한다. 데이트 폭력을 자행하는 (대부분이 남자인)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치 부동산 보듯 보는 것만 같다. 자가를 소유하는 것처럼 타인을 소유하려고 하고, 항상 그 감정이 우상향 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저곳 청약을 넣어보는 것이 마치 데이팅 어플에서 하트를 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같다.


- 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으로부터 끌어당겨진 책은 최갑수의 <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겹쳤던 그 시간"이라는 표현에서 어떤 사람을 평생 못 잊을 수 있다는 심리적  절박함을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인생을 운명이라고 여기면 책임감도 생겨나지 않는다. 만남은 운명이 아니라 서로의 선택이고 그래서 서로의 책임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에서 해답을 얻는다.


3. 돈을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상황을 볼 때

- 돈 때문에 사람까지도 죽이는 세상의 뉴스거리는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닌 것만 같다. 이제는 이유 없이 사람 죽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조정래를 찾는다. 작가의 최신작 <황금종이>를 읽는다. 소설의 형식만을 빌리고 내용은 우리네 인생에서 직접 접했거나 건네들 었을법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했다.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을 찾는다. 다소 뻔한 내용 전개가 예상이 되었기에 원서로 읽어봤다. (예상대로)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지만 번역본 대신 원문으로 보면 신선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다. Good decisions are not always rational. 좋은 결정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


- 몇 년 전 유행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도 읽었다.  "시간은 대출이라는 게 없어"라는 문장에 흠칫. "우리 돈도 달리는 기차에 태워야 해"라는 문장에 나의 자산 증식 속도는 유아용 따릉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4.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지 무력감이 들 때

-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때 눈에 들어온 김현성의 <자살하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와닿았던 문장. "중소기업의 경우, 안전관리에 돈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죽어 나가더라도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인 경제구조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 그럼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면 되는데, 보장하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저임금, 고강도 제조업/서비스업 일자리는 외국인들에게 아웃소싱한 지 오래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고 일자리를 잃으면 그 사람은 여생을 살고 싶을까 아님 죽고 싶을까? 어차피 사람은 죽는데 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더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 사람새끼인가? -라는 저속한 단어로 내 존재를 의심한다. 우울과 혐오가 만연하여 자살을 하는 사람과 회를 걱정했던 내가 너무 역겨웠다. 앞으로도 이 사회와 외로움과 우울이 만연하면 이곳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하고 사업 모델을 검색해 봤다. 로맨스 스캠과 보이스 피싱 등등이 나왔다.


5.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공허하다고 느낄 때 

 - 무슨 일을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찰나의 공허함. 그 씁쓸함처럼 사무실의 캡슐 커피는 점점 맛이 없어진다. 최고급 원두와 무지개 빛깔의 네스프레스 캡슐은 커피머신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씩씩거리며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나의 본분은 무엇일까?


- 본분은 없다.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라고 가정한다. 양자역학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ㅏ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목적이 사라진 곳에 빈 공간이 생긴다. 이 빈 공간 즉, Void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하나의 가능성일까? 근데 왜 하나의 가능성인 a void는 피한다는 뜻을 갖게 되는 걸까? 자연스럽게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6. 반야심경을 읽어야 된다는 의무감이 들 때

- 아침 8시 fol:in 아티클을 읽는다. 콘텐츠 업계를 떠난 지 오래지만 콘텐츠는 단순히 산업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계속 공부해야 되는 분야가 되었다 -라고 하는 이야기들에 또 한 번 void와 空, 그리고 탱탱볼처럼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겠는 머릿속 상태와는 다르게 눈은 모니터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 본무자성(本無自性)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표현을 to-do list 위에 적는다. 요즘은 기초적인 한자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저게 무슨 뜻인고 하니,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에 따라 잠시 관계를 맺고 얽혀 있을 뿐'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철학자 최진석이 말했다. 반야심경을 가히 최고의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단호함과 강직함에 <건너가는 자>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문제를 만나면 항상 풀고자 했다. 살다 보니 없는 문제가 없이 많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문제를 그대로 수는 없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최소한 읽어야 했다. 읽어낼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뱉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품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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