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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가 한국에 있었다면

by AND ONE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모든 이에게 자유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이제는 몇 번을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문장을 반쯤 죽어있는 내게 들입다 부으면

서울의 질식할듯한 사회 전반을 감싸고 있는 위압감 같은 것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모든 이에게 자유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카페에 앉아 인간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 듯 이어폰에 정신력을 밀어 넣은 채

조르바의 삶과 카잔차키스의 문장 그리고 청아하고 순수했던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를 들으며

가슴으로 울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무력감도 조르바와 카잔차키스의 일생을 엿보며

그리고 번역가 이윤기의 문장과 재치, 그의 절박했던 실제 생애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오늘 오전 9시 3분경, 방콕발 무안공항행 비행기에서는 181명의 삶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연말의 마무리와 다가올 신년을 기대했던 삶은 굉음 아래 적막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생존한 2명. 그 생명은 이전과는 다른 생(生)이 될 것이다.

죽음이 생을 낳는다. 산다는 건 죽는 일이다. 하느님과 악마가 하나이듯,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이다.


사랑과 이별도 하나다. 살아있고 동시에 누군가를 죽이는 일.

그것이 우리 인류 모두가 행하는 잔혹하고도 서글픈 사랑의 역사이리라.


죽음의 글이 생의 불씨를 타오르게 만든다.

활활 타오르는 전소된 비행기에 묻힌 수많은 생명에 위로와 슬픔이 가득하길.

눈물로 세운 바닷길이 화마에 휩싸여 타들어가는 존재들을 식혀주시길.


절대자가 절대 없다고 믿는 만큼 절대자의 가호가 닿기를.

이 책을 읽는 동안 크레타 섬의 자유인이 되었던 나의 영혼에 육화 된 행복이

손에 쥐어 잡은 연필을 통해 혈관 속을 흐르는 핏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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