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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Oct 05. 2024

[밑줄독서] 김기태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읽고 싶은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도피처럼 떠나온 여행 이후에는 다시 마주해야 하는 삶이 있음을 알기에. 나와 나로부터 말미암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삶을 좇고 있는 것인가 삶이 나를 쫓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당장의 문제는 시차였다. 타지에 갈 때는 식사 시간을 현지 시각에 맞춰 먹어야 생체 리듬에 맞게 우리의 수면 패턴이 적응하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삶의 시차를 적응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속도가 다른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동 시간에 존재한다는 것. 그러한 상태는 시차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시차는 어쩌면 우리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시차를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적합한 비행기. 거대한 항공기체 안에서 비좁게 앉아 있으며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존재의 부재를 상상과 회상으로 채우는 순간들이 구름처럼 가득해질 때쯤, 가을이 찾아왔다. 티끌 하나 없는 높은 하늘 위에서 읽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작가의 글 지독히도 지면에 붙어 있다. 평범함을 평범하게 풀어내는 방식이 평범한 일상에 변화를 주는 비행기를 타는 행위와 닮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핍진성의 서사에 보이지 않는 핍박과 차별의 공급자와 소비자가 되어버린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내식을 먹이고 모두를 재우기 위해 캐빈이 어두워질 때 스위치를 켜는 그 순간, 오롯이 내게 집중되는 그 빛처럼. 어떤 문장은 빛이 났고 가끔은 그 빛을 쫓아가다 눈부셔 살포눈을 감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추천한 사람은 많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해외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시기를.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느껴질 뿐이어서 의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내가 의견을 가져야 하는지, 그런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먼바다는 잔잔하게만 보였다. 수평선은 단호했다.      

왜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재를 느낄 수 있는지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속을 보이면 어째서 가난함과 평안함이 함께 올까      

'이상'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해서 거꾸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듯도 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인간이란 자기가 살지 않은 과거는 뭉뚱그리는 관성이 있다.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 유용했다.      

자본은 때때로 자신이 무엇을 잉태하는지도 모르고 질주한다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나는 조금 이상해짐으로써 아주 이상해짐을 막기로 했다.            


  해설 (문학평론가 이희우)     


'평범함'은 종종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개념이 된다.      

한쪽에는 평범함을 넘어서라는 압력이 존재하고, 한쪽에는 평범함에 도달하라는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이중의 압력은 '평범함'을 벗어날 수 없지만 달성할 수도 없는 특징으로 만든다.      

문학은 정치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어떤 계기와 힘을 갖고 있지 않다. 평범함은 정치와 문학이 출현하는 공통의 경험적 바탕이지만 문학은 다른 관점과 태도로 평범함과 관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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