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모국어는 수치심이다.
만약 부국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침묵일 것이다
김지수 작가의 인터스텔라 인터뷰를 정기적으로 읽습니다. 이번 주제는 '자살' 특히 조력사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죽음을 원하여 전문의의 입회 아래 죽음의 일정과 방식을 정하는 조력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말입니다.
흔히 자유의 개념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살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의지의 활동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주의적 문화에서는 의미를 형성할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이 죽음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고 그 어느 때보다 불안 과잉과 초민감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은 결코 선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80만 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그중에서 2/3 이상이 남성입니다. 자살 시도를 하는 성별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성공률은 남성이 훨씬 높은 것이죠. 여성의 자살이 과소평가받아야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한국의 2030 여성의 우울증 증가율 추세라면 자살률에서도 성평등을 이루는 데 머지않아 보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삶을 포기할 가능성은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요소입니다. 죽음 앞에서만큼은 갈등이 아니라 연대와 문제해결을 위한 집단적 의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 책을 조선비즈에 소개한 김지수 작가의 말처럼, 가장 사적이되 가장 사회적인 사건으로 '자살의 언어'가 해금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해결되려면 말해져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라는 질문에 필자도 여전히 제대로 답변하지 못합니다만 <자살의 언어>에서 만난 문장을 아래와 같이 공유해 봅니다. 여러분과 공명할 수 있는 밑줄들이 있기를 바라며.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자살의 모국어는 수치심이다. 만약 부국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침묵일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조차도 다른 사람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자살하는 사람 중 두 명은 남성이며, 남성의 자살 시도는 대체로 죽음으로 끝난다.
다른 이의 몸을 찌르는 자는 그자의 육신을 죽이지만, 자기 자신을 찌르는 자는 스스로의 영혼을 죽인다
자살은 스스로 죽음으로써 자기 삶에 대한 통제를 회복하는 것이었을까?
자살이란 어떻게 보며 뇌에서 언어, 기호, 추상화, 가정이라는 환상적인 기능을 발달시킴에 따라 인간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삶을 포기할 가능성은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요소다.
자살 관념이 들 때 대개 기력을 잃는다는 사실은 또 다른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몇몇 환자가 항우울제를 복용하여 기분이 나아져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충분한 기력을 모으기도 한다는 사실은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자살할 것임을 올바르게 추측하는 경우는 드물다.
뇌가 주변 환경에서 받는 입력을 '예측' 함으로써 우리가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예측 부호화라고 하는 이 현상으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리라 기대하는 세상을 경험하는 셈이다.
언제부턴가 항상 누군가 정확한 질문을 던져 주길 바라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살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은 죽은 사람을 연구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자살 시도에서 생존한 사람들 혹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전혀 없는 사람을 연구함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살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처럼 벌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름 낀 하늘에 벼락이 치는 것과 비슷하죠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면 아주 많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죠. 당신이 가진 80년을 넉넉하게 쓰고,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하곤 합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높여야 합니다. 똑같은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되면 자살을 더 쉽게 예방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환자들이 면담을 올 때마다 새로운 직원을 만나는 일이 너무 흔하거든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中) 아찔한 이슈를 이토록 대담하게 충돌시키면서도 문장의 호흡이 사나워지지 않을 수 있다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中) 가장 사적이되 가장 사회적인 사건으로 '자살의 언어'가 해금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해결되려면 말해져야 되기 때문이다.
https://biz.chosun.com/topics/kjs_interstellar/2024/11/23/6JUQ3YDF2JCOLKPGJ5J53BNC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