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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독서] 생텍쥐페리 - 인간의 대지

by AND ONE

'25.03.24, 오사카 기타하마 Saint Marc Cafe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떠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는지 기록한다. "인생은 기억과 기분과 기대의 하모니"라고 유명한 작가의 문장처럼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아직 내겐 일시와 장소 이외엔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


상업지구 한가운데 위치한 Saint Marc Cafe. 구글맵 평점 기준으로는 특별한 곳 없는 곳이지만, 이곳은 새벽 6시부터 활기가 대단한 곳이다. 여전히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은 출근 전 종이 신문을 읽거나 필사를 한다. 공부를 하는 일본인들이 가득하다. 어울리지 않는 반바지 차림의 한국인만 모닝세트를 앞에 둔 채 새벽 비행을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벽에 시작하는 나만의 야간 비행이라고나 할까. (생텍쥐페리가 조종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라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다)


깊게 이해받는 건,
스스로의 잠영을 통해
이뤄내야만 하는 건 아닐까?

월요일 아침, 7시가 되기 전 일상을 살고 있는 현지인 곁에서 책을 읽는 것. 이 경험보다 값진 것이 여행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출장에서는 직장인들이 가득한 카페에 어색하게 걸터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과 손님들 사이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아, 인생의 시원을 쫓는, 삶의 주인이 되는 글쓰기. 연필로 쓰고 필연을 만들고 싶다. 일본은 꼭 그러고 싶은 곳이다.


내 젊은 열정은 산책을 했다.
나는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낯선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자랑스러웠다.

오사카에서 서울로 다시. 간사이의 가라앉은 밤의 하늘은 꼭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겼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흔들리는 난기류에 비행기는 흔들렸다. 야간비행처럼 흩날리는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이 엔진 옆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명멸했다. 명약관화했던 인생의 진리들은 별이 천천히 빛을 잃는 것처럼 흐릿해진다. 이 타르 같은 어둠을 헤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까?


이 책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디 "OOO 독후감"으로 유입된 조회수가 없기를)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와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을 페어링 해서 읽어보는 것. 밤에 는 인간의 대지와 무거운 레드 와인이 좋겠고, 낮에는 열병 같은 꿈틀거림과 간질거리는 삶의 약동을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의 목 넘김으로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 (언젠가 여름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와인 2잔과 책 2권을 놓고 시원한 바람 아래 눕고 싶다)


와인 2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두 권의 책을 비스듬히 둔다면 SNS 게시용 구도가 나오겠으나, 두 명의 프랑스인 구도자 앞에서는 나도 괜스레 폰 대신 펜을 잡고 나만의 대지에 뿌리를 내린다. 뿌리 깊은 글을 직접 쓸 때, 나는 오늘도 삶에 씨앗을 뿌린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내 젊은 열정은 산책을 했다. 나는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낯선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자랑스러웠다.

담뱃불이 깊은 명상에 잠긴 이들에 구두점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나이 든 월급쟁이들의 하찮은 명상에 말이다.

하늘의 저 색채, 바다 위를 스치는 바람의 자취, 황혼의 황금빛 구름 들은 승무원에게 경탄의 대상이 아닌 숙고의 대상이다.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라는 부이니까.

하강기류는 이따금 조종사들에게 묘한 불쾌감을 주지. 엔진은 제대로 돌아가는데 비행기는 하강을 하니까.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다.

모든 진보가 우리가 겨우 체득한 습관 밖으로 우리를 더 멀리 쫓아내 버렸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아직도 조국을 세우지 못한 이민자 신세일세.

생명이 생명에 그렇게도 금방 가 닿는 세계에서, 바람이 쉬어가는 곳에서조차 꽃과 꽃이 쉽게 뒤섞이는 세계에서, 한 마리 백조가 다른 모든 백조와 친분을 나누는 세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고독의 성을 쌓는다.

나는 내 처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해 있는 처지를. 모래와 별 사이에서 빈 몸으로 있는 처지를, 넘치는 침묵으로 내 생명의 극점에서 이리도 멀리 떨어져 나온 처지를 말이다. (중략...) 여기서 내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단지 모래와 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숨을 쉰다는 아늑함만을 의식하고 있는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사막이 일견 공허와 침묵일 뿐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하루살이 애인에게는 자신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의 아주 소박한 마을조차 제 모습을 은밀히 감추듯 말이다. (중략) 인간의 왕국은 내면에 있다.

사람들이 신전에 틀어박히듯 스스로를 유폐하는 밤이 오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엔진만이 이 타르 같은 밤 속에서 우리를 떠 있게 해 준다.

나의 피로가 무수한 실재(實在)로 나를 감싼다.

사람들은 인간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우물에 매어둔 밧줄을. 탯줄처럼 인간을 대지의 자궁에 매어 두고 있는 밧줄을.

나는 이제 더는 이해할 수가 없다. 교외 열차를 탄 저 무리를.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느낄 수 없는 어떤 압력을 받아 마치 개미처럼 오로지 쓸모에 의해서만 환원된 저 사람들을.

소명 의식이 있어야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그 소명 의식 자체를 해방시키는 일도 필요한 것이다.

나는 연민을 믿지 않는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사람들이 나태에 안주하듯 이러한 비참함에 결국 안주할 거란 사실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무료 급식을 한다고 해서 이 괴로움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저 올록볼록한 진흙 덩어리도 아니고 저 추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저 인간들 한 명 한 명 안에 있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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