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0)
정년아, 정년아
정녕 나라는 사람이
정년퇴직을 할 수 있겠는가?
혼자 먹는 점심. 오늘도 점심 먹기 직전까지 유관 부서와 열을 내며 통화했다. 통화는 길고도 짧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정년이들은, 대기업 공식 문화인 '님 자를 붙이지 않는다. 초면인데 첫마디부터 반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고 적힌 달력이 펄럭인다. 상대방의 자세가 고압적이다. 불친절하고 비협조적인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사람은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만큼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에 불친절에 불친절로 응수한다. 나이와 직급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문득 대기업 정년을 앞둔 선배님들에게 존경심이 느껴진다. 그들도 내 나이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억하심정을 누르고 참아왔으리라.
보통 대기업 정년에 도달한 선배들은 현자 같다. 일희일비 않는다. 허나, 일부는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행동한다. 직함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의 직급은 역설적으로 책임매니저다. 물론 그들도 본인의 인생과 가족을 책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믿고 싶다. '그 사람도 아버지로서 힘든 게 있겠지' 속으로 이해하고 싶다. 바보 같은 짓을 관두기로 한다. 그 정도 나이면 연봉 1.5억쯤은 된다. 근무 시간에 네이버 뉴스 보기와 주식창 볼 수도 있다.
솔직히 직장에서 열심히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근로소득의 한계를 느끼면서 근로할 수밖에 없는 게 근로자의 삶이다. 허나, 열심히 하고자 하는 타인의 동기를 저하시키는 사람까지도 기꺼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가?
정년이들이
정녕 정년 연장을
정정당당하게 요구한다면
과연 이 나라의 청년들은
무얼 하며 살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며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못한 채, 정년만 바라보는 사람과 통화를 나눈 후 밥 먹을 때면, 허기짐이 해소되지 않는다. 허기짐은 남아 있는데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소화제를 마실까 하다 멈칫한다. 위와 식도를 너무 자극하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위와 식도는 회식을 위해 아껴둔다. 회사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까지 내 몸을 세심히 케어한다.
그래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사내 인트라넷에서 퇴직금 조회를 한다. 3천만 원 정도 쌓였다. 자고로 퇴직금은 없는 돈처럼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만 이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퇴직금을 왼쪽 모니터에 띄워놓고 오른쪽 화면에는 챗GPT에 검색한다. '소자본 창업'과 '무자본 창업'. 결과가 주르륵. 눈물도 주르륵. 역시 퇴직금은 퇴직 욕구가 아닌 근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전국에 정년을 앞둔 사람들이여, 부디 이 글을 노여워하지 마시길. 사실 나도 두렵다.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에 무언가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말이다. 비교 기준이 동년배인 손흥민이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게 이렇게 큰 문제다. 혼자 밥 먹으면서 토트넘 우승컵을 들고 기쁨과 환희에 잠긴 그를 보며, 임신 사실 입막음을 위해 건넨 돈, 3억을 생각한다. 그의 주급 3억. 현재 나의 퇴직금 3천만 원. 공(0) 하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다니. 공놀이가 최고다. 솔직히 공돌이도 괜찮다. 근데 어쩌나, 공허한 미사여구로 일하는 척하는 수많은 대기업 중간관리자들의 사람들의 자리는 없어지는 중이다.
의무가 길을 인도해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
앙드레 지드 -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가 말했듯, 의무가 길을 인도해주지 않는 자유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은퇴다. 그래서 우리는 은퇴라는 단어 앞에서 양가적 감정을 갖는다. 이제는 고어가 되어버린 파이어족이 있었다. FIRE (Financially Independent and Retire Early) 족을 열망하던 이들은 미국 주식과 환율, 글로벌 저성장 기조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서로 인재를 모셔가기 위해 연봉 인상 경쟁을 했던 취업 시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입/경력 모두 빙하기에 진입했다. 기후 변화의 문제가 여기까지 침투했나 보다.
대기업에만 있으면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기 어렵다. 한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한겨울엔 뜨거운 히터. 복에 겨운 냉난방의 조합이 냉탕과 온탕을 오갈 미래로 향하는 지름길인도 모른 채. 자유를 갈망하는 직장인 중 대부분은 사실 한 번도 의무가 길을 인도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쉽게 말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게 '자유'가 아닌 것을 알지만 그것만큼 편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장에 '붙어' 있는 것이다. 오래 '붙어' 있으면 '불어' 터진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만 불어 터지면 된다. 그럼으로써 내 새끼를 지킬 수만 있다면.
이렇게 쓰고 나니 정년이 형님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허나, 그들을 넓은 마음으로 품기엔 나의 그릇은 작다. 어느 순간 내 그릇의 크기가 구내식당 식판에 짜 맞춰진 기분이 든다. 상무님에겐 밥그릇, 팀장님에겐 국그릇, 일 잘하는 상사에겐 반찬 그릇,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겐 종지만큼의 크기가 남아 있다. 가끔은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같이 누군가와 밥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