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혼남] 물류센터에서 점심 혼자 먹는 남자

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1)

by AND ONE
쿠팡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안개처럼 불안이 퍼져있다. 불안이 안개처럼 자욱한 날에는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 내 마음에 비가 내리는 것보다는 몸에 땀이 흐르는 걸 선호한다.


월 300 이상. 학력무관. 건강한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 누구에게나 열린 가장 평등한 직업. 하지만 그런 쿠팡 물류센터의 업무조차 위험하고 고된 일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남성이 짊어지는 중.

(그런데도 수당이 동일하단다)


오늘도 중년의 남녀가 선두에 있다. 요즘 젊은 남녀는 영악해서 힘쓰는 일은 회피한다. 기계처럼 일하기를 바라는 일에는 오늘도 중년의 남녀가 대부분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위험수당과 생명수당과 당직수당은 '평등'이라는 이유로

위험과 비례하지 않는 보상 체계 만연해진다. 참으로 문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에겐 공백기가 허용될 수 없다. 내 앞 컨베이어 벨트에 공백이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요즘 평생직장은 없어도 평생 근로는 필요해서 그런지 머리가 희끗해진 사람이 많이 보인다. 에너지바 하나 옆사람에게 들이민다.


얘기를 좀 들어보니 은퇴 후 삼식이가 되기 싫어서 도서관을 가거나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쿠팡으로 돌진한단다. 일단 서류는 회사를 나오기 전에 준비해 뒀고, 챗GPT한테 정부 공공 일자리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도 정리해두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준비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단다.


이럴 땐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게 최고다. 자율성과 책임 없는 일자리가 나쁘지만은 않다.

허나 이것도 오래가진 못하겠지. 로봇이 곧 인간을 대체할 테니.


로봇. 로오오오오봇! 로봇 강국 중국과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차와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 로봇은 뭐가 그렇게 흥에 겨운지 고관절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춤사위를 보일 때면, 이놈의 스캐너를 집어던지고 싶다.


바코드를 찍는다. 내 눈앞의 물건이나, 나의 근태 기록이나 모두 바코드 하나만 있으면 이놈의 일련번호 체계 아래, 인생의 순위도 정해진 듯 정해진 경로를 따라 그 크기에 따라, 목적지에 따라 분류되고 분류되고 또 분류된다.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상품들. 가끔은 그냥 나도 5호 박스 상자에 포장되어 누군가의 품으로 로켓배송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은 이 애매한 느낌.


이런 순간에는 지독히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먹고살아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울 엄마는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져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했을 때면 그리고 취업에 성공하면, 언제나 일찍 출근했다. 공장 열쇠를 갖고 퇴근한다. 본인이 그만큼 일찍 가서, 문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 위험한 노가다 현장에서 일을 빼지 않았다. 위험한 일은 제발 그렇게 당신이 욕하던 조선족들이 할 때까지 내비두라고 말해도, 일이 되지 않는 꼴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쇠파이프에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밀려드는 저 상자들은 소분되어 각자의 길로 향하고 있는데 내 꿈은 어디로 배송 중인 걸까?


아, 쿠팡 알바 끝나면 쿠팡이츠에서 저녁이나 주문해야겠다. 쿠팡플레이로 찜해놓은 무료 영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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