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는 자, 필사적으로 비효율을 추구하는 이유

[트래블루스] 다가온 가을과 멀어진 여름의 다카마쓰

by AND ONE
다카마쓰엔
우동보다 사나이 울리는
올리브 재즈 나폴리탄이 있었다.

Note. #1

다카마쓰 썬포트 츠타야 서점에서 Traveller's notebook을 구매한다. 오직 여행지에서만 쓰고 싶은 메모장. 작은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행복감을 글로 쓰는 행위. 단지 글로 쓰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이 어떤 의미를 세상에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쓸 수 있다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다카마쓰, 하루키의 우동 여행기가 읽고 싶어지는 저녁. 심야우동집 shinpei udon.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을 때 간단히 입속을 즐겁게 간지럽히는 사누키 우동의 탄탄한 면발은 탱글한 그것을 떠올린다는 전개로 가는 것이 일본의 토속성이겠으나 서른 중반으로 향하는 유부인 내게 그런 상상력은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입안에서 찬란한 자이브 댄스를 추고 있는 건 단순히 우동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JAZZ.


Note #2. 재즈바 Fifty (1)


레코드 재즈바 Fifty. 라이브 재즈바를 선호했던 나의 편견을 깨준 이곳. 라이브와 달리 실망할 일이 없는 퀄리티가 보장된 곳. 도쿄의 동명 재즈바 열혈 고객이었던 마스터는 로고를 이어받아 2023년에 새롭게 다카마쓰 fifty를 개점. 마스터 할배는 한국인이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한글 메뉴판을 권한다.


재즈카페의 매력은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소리에 있다 - 는 다카마쓰 공식 블로그 소개를 보고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확신. 이 여행을 결심한 내게, 스스로에게 진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내에게, 들리는 재즈의 선율이라는 것은 마스터가 엄선한 스피커에서 폭발하는 색소폰의 요동이 다른 모든 악기를 압도할 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살아있음을 귀로 만끽한다. 아니 팔로 전율한다.

스피커의 진동과 심장 박동이 발걸음을 맞춤. 이럴 때 필요한 입맞춤. 다들 무엇에 맞춰가며 사는가.

바쁜 도쿄 도심에서 벗어나 다카마쓰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곳의 마스터 이름은 '후지하지 상'. 레코드에 바늘을 올리면, 레코드에 새겨진 분위기까지 전해진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정확하여 쓰는 것을 멈춘다. 글로 표현된 실제가 상상과 현실의 간격을 없앨 때, 쓰는 것의 의미는 사라진다. 오직 중지의 왼쪽 굳은살에 아로새겨진 감각이 지금의 음악을 기억하는 노스탤지어가 될진저.


아, 지금 내 앞엔 튀긴 올리브유 향이 코끝을 찌른다. 소도시마에서 불러온 올리브 바람이, 기름에 익혀지는 무언가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피아노 건반과 기름의 점프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 레코드 재즈바에서 나폴리탄 파스타를 먹는 일본인 손님.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이름, 1970년 생의 와다 케이슈케 상)


이곳에서 몇 시간이든 있을 수 있다. 벌써 다음을 생각한다. 시간만 있다면, 매번 일본에 와서, 일시적인 그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재즈바 바테이블에서 여행자의 노트에 인생을 기록하고 싶다.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삶이라는 파도를 어떻게 타고 넘을지 생각하고 싶었는데, 파도가 치지 않는 다카마쓰의 따뜻한 바다에서 얻은 한 가지 깨달음. 무라카미 하루키가 KAFFA ON THE SHORE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ON THE BEACH가 되면 카프카의 고독과 성장을 흰 거품에 양보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의 신중함.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을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대해, 신중함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 허나 그를 위해 허락되는 시간은 짧다. 현대인의 모래시계, 커피 한 잔이 담은 시간은 짧고도 짧다.

어느새 하룻밤 밖에 남지 않은 이 여행. 이곳의 분위기가 슬프다. 내적으로 행복한 마음이 차올라 오히려 우물이 생긴다. 행복이 넘쳐 흘러나와 생긴 우물에서 우울을 만난다. 그 우울은 하이볼의 맛처럼 희석되며 달콤해진다. 행복이란 이런 거 아닐까? 하이볼처럼 달콤 씁쓸한, 모든 감정이 선명함에서 희미함으로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탄산이, 아직은 인생을 살고 싶게 만드는 잔잔한 여운이 되는 것이라고.


Daiyame를 시키는 순간,
마스터는 답한다.
"드링크 스타이르와?"

...

"온 더 라크, on the rock"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얼음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 위 점점 작아지는 인생의 중심에서 비록 외발 서기를 해야 되는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는 미끄러지면서도 그때의 흔들림을 미세한 진동을, 점점 증폭되는 사운드가 귀를 바깥에서 안으로, 고막을 휘감은 note의 파도가, player의 헤엄치기가 나를 바다로 부른다. 그곳에서는 울어버려야만 하는 게 아오이 블루. 블루스. 블루 노트와 블루 impression, kind of blue, 블루 블루 블루. 파랑의 파란, 파란 하늘과 하늘색 음색이, 비록 깊숙이 이 나라를 알지 못해도 매번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이곳에서 펜은 Sax처럼 춤을 춘다. 그럴 때면 나는 파랑의 눈물이, 그 눈물을 필요로 한다.


Note #3. 재즈바 Fifty (2) : 나폴리탄 도착.


이 글의 제목은 분명 <일본의 재즈바에서는 반드시 나폴리탄 파스타와 함께> 되어야겠지. 일본인 손님이 선곡한 [Tatsuro Yamashita - For you]. 지금 이곳에 있는 나를 위한 선곡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노래가 나를 반긴다.


이곳에 있은 지도 벌써 3시간째. 다른 좌석의 얼굴들은 모두 바뀌고 오직 나만 남아 있는 시간의 흐름과 정지 상태. 그 빈틈을 파고드는 시티포프의 선율. 함께 흐르는 생맥주의 목 넘김. 이제 곧 다가올 달넘이 앞에서 나는 아직 이 밤을 순순히 보내주고 싶지 않다. 간절히 짝사랑하는 기분이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어를 배울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인데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 일시적인 감정에 너무 취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가게의 이름인 fifty, 50을 생각한다. Morning glory, 나팔꽃처럼 아침의 영광을, 눈을 뜨면 그 순간부터 생의 아름다움을, 햇살을 맞으며 바닷바람이 날 일으켜 세우는 그런 아침을 상상한다. 상상력은 결국 책임감. 내 인생에 책임감을 가질 때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찬미.


3시간 동안의 행복 21시 20분에 주문을 시작. 24시 20분으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앉아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음악의 끝과 여행. 그리고 일과 일, 그 사이에 일어나는 에피소드, 이 전체를 <사랑>의 눈빛으로 영원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내게도 남아있기를...


앞에서 양파를 까고 있는 마스터 때문일까...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온전히 시간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고 고이 접어서 오니기리를 만든다. 지금의 시간은 곧 추억이, 상념이, 그리움이, 희망이, 희미한 빛이 되어 찬란한 지금의 인생이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반딫불이가 되어주겠지. 그때의 색깔은 역시나 블루. 짙은 파랑. 깊은 파랑. 모든 걸 받아들인 심해의 파랑.


Note #4. 재즈바 Fifty (3) : 라스트 블루.


떠날 수가 없다. 턴테이블이 만드는 머릿속 태풍. 세상에 숨겨진 수많은 음악, 그 영혼들이 바이닐에, 나이테에 원을 그리며 아로새겨져 있다. 그 흔적에서 헤엄치는 게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이볼과 고구마 소주, 생맥주에 번갈아 의지하며 취기에 마지막 힘을 빌린다. 각자 나름의 음악적 성취를 이룬 아티스트 그리고 글쟁이의 멋진 허울만을 좇고 있는 나. 그렇다고 새로운 성취를 찾고 있는 건 아니다. 뭐랄까... 가끔은 지금의 이런 삶도 괜찮다고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


다카마쓰엔 우동보다 사나이 울리는 올리브 재즈 나폴리탄이 있었다. 그 어느 시대보다 효율이 중요해진 시대에서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 필사적으로 비효율을 추구했다. 비효율이 인간을 살리는 리듬임을 알기에(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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