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루스] 저 멀리 혼자 있는 남자
혼란 앞에서 정직해지기 위해
다시 글을 쓴다.
시간을 보냈다고 느낀다면, 시간 속에서 살지 않은 것일까. 시간의 바깥에서 배회하는 자. 나는 분명 회사 근태관리 시스템에 출퇴근 등록을 했는데 그 시간 안에는 누가 있었던 것일까. 시간의 흐름 안에서 시간을 인지 못했던 그 순간은 언제였을까. 한 단계만 더 나아가자. 혼란 앞에서 정직해지기 위해 다시 글을 쓴다.
비긴 어게인. 왜 청춘은 청춘에게 낭비처럼 느껴질까. 열병 같은 젊음도 염병 같은 소리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냉소와 무기력함. 어쩌면 브런치에 작성하는 이런 문장 하나가 AI에 인덱싱 되어 재생산되는 자조. 그로부터 이어지는 자존감 하락 그리고 나락.
나락. 놀랍게도 나락은 동음이의어다. 벼의 낟알이나 볍씨를 뜻하는 순우리말. "나락"을 입에 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시오!
새로운 시대에는 언제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법. 나락(樂), 나를 즐겁게 하는 일. 나락(樂)으로 떨어지는 일. 그건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물론 그 자유로움의 뒤에는 일요일 자정까지 부재중 자동회신 이메일을 작성하고, 주요 예정사항을 정리하여 보고 하고, 추석 연휴까지 고려했을 때의 업무 지장을 고려하여 10월 초에는 가끔씩 회사 노트북을 켜고 '긴급한 메일만 확인하자'라고 다짐하는 내가 뒤에 있었다.
앞뒤의 모습을 바꾸는 일. 그리고 자신의 앞과 뒤의 모습을 동시에 인정하는 일. 그건 분명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에 정직해진다는 즐거움을 느끼는 일과 같은 말일 것이다. 나의 앞과 뒤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볼 줄 알 때, 나의 앞뒤와 양 옆으로 존재하는 타인을 관찰하고 인식할 때, 온 세상을 몸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로부터 비롯될,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기다려진다. 내 미래가 기대되는 일, 그것이 곧 나락(樂)인 것이다.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 예상치 못한 연착이 발생한다는 것. 1시간 연착이 1시간의 글쓰기가 되었다. 하나의 연착에서 비롯된 하나의 생각. 우리 각자 사회에서의 역할이 있듯, 시간에도 역할이 있는 것이다. 휴가,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해가 비추는 동안 짬을 내어 쉰다는 뜻에 충실하여 볕을 쬐며 초록에 기대어 파랑을 바라볼 것이다. 나랑 여행. 나락(樂)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