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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공활한데 인생은 공허한 당신에게 쓰는 편지

수취인 불명, 가을에서 겨울로 갈때쯤 오는 불면 앞에서

by AND ONE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쓰는 일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쓰는 일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왜 사람들은 '이 편지는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라는 SMS에서부터 '이 댓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의 기운이 함께하길~'과 같은 덧글 문화까지. 수취인 불명의 편지는 역설적으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성취감 같은 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지요.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지요. 나의 삶을 쓴다는 것, 비록 그것이 매일 반복되고 특별할 것 없는 삶이라도 말입니다. 넓디넓은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볼지 결정하고, 어떠한 가치와 신념 체계를 갖고 혼돈의 세상에서 나만의 질서를 수립하고 그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표현하는 일. 이런 수취인 불명의 편지에는 가슴 한편에 있는 인생의 공허함을 가을 하늘의 공활함으로 바꾸는 행위겠지요.


우리나라 애국가 3절의 가사처럼,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 이 말의 참뜻은 하늘이 맑고 넓으며, 텅 비어 있지만 활달하여 생기 있다는 것에 있겠지요. 이것이 [공활]과 [공허]의 차이입니다. 이는 활달함과 생기의 차이. 넓고 맑은 하늘과 넓지만 맑지 않은 마음의 차이겠지요. 인생의 공허함은 탁한 상태.


여기서 무릎을 탁! 칩니다. 인생이 공허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참으로 모순적이구나. 탁한 마음을 딱한 마음으로 바꾸면 역으로 인생의 활기가 생깁니다. 공허에 눌린 자신을 돌보고자 하는 딱한 마음, 지금껏 내 존재를 위해 희생한 주변 사람을 위한 연민의 마음을 갖는 순간, 마음은 닫았던 입을 열고 말합니다.


마음이 입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혼탁했던 것입니다. 다들 한 번쯤, 오랜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때, 입에서 냄새가 나는 그 상태. 그게 바로 혼탁한 마음의 상태인 것은 아닐지요.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입을 열 때, 나와 같은 믿음을 갖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떠한 행동이라도 하고 싶다. -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쓴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은 그렇게 태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요.



가을 하늘엔 수취인 불명의 알록달록한 편지들이 흩날리는 중입니다. 공활한 하늘에 공허한 마음을 내뱉는 순간, 날숨엔 새로운 바람이 들어오지는 않을까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리 곁을 떠나려는 가을을 붙잡는 방법,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공활한 하늘을 바라보기.


추신. 공허한 마음을 가진 당신에게 공활한 상태가 막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상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먼저 경험해보아야 하는 것처럼, 당신은 이미 '공활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공허'는 '공활함'의 전제 조건이니까요. 일요일 밤의 공허와 월요일 아침의 공활함이 교차하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출근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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