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루스, 펜으로 춤을 추는 여행
삶을 포기할 가능성은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요소다.
[자살의 언어] 中
비행기를 타는 순간, 죽음을 떠올린다. 비상의 순간 비상 상황을 떠올린다. 성층권에 도달해야 구름의 왈츠가 보인다. 그리고 착륙의 순간, 캐리어를 각자의 방식대로 끌며 내는 모든 소리들이 춤 춘다. 각자의 몸짓에 따라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각자의 중심이 있다. 그리고 균형이 있다. 서로 같은 듯 다르다.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과 균형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것. 하나는 정적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이다.
무게 중심은 균형이다. 각자의 인생에서 무게 중심을 찾는 것. 그것이 나이 먹어감이다. 누군가는 인생을 설계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각자 지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살면 되는데, 모니터 뒤에 하나의 인간이 있고 거리의 현장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나도 힘든 만큼 타인이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을 텐데. 야속하고 속상하다.
작금의 위정자와 탐관오리들의 부패와 인간성 상실은 그들이 정의해놓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게 좋다고, 그 삶을 추종하고 우상화하여 좇는 인간들이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면 진영 논리에 빠진 이들이 좌빨과 수구를 논하며 헐뜯는다. 정치병이 걸렸다며 건강한 대화를 하지 못한다. 타인을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하나둘씩 포기한다. 가장 포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가장 쉽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남는다. "내가 나를 포기하는 것"
이때, 떠나야 한다. 그 블루를 새로운 블루로 덧칠하는 수밖에 없다. 덧칠에 무게가 생기고 중심이 생긴다. 그게 무게중심이다. 우울에 빠진 이에게 웃음을 줄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내가 인식하는 나의 우울보다 더 큰 우울이 있음을 인식하기 위해 떠나야 한다. 저 멀리 너울성 파도의 철썩 소리가, 어업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한 가장의 울부짖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 나의 우울을 세상에 존재하는 우울로 덧칠하는 것. 그렇게 나를 지워낸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내 안에 있지 않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을 필요도 없다. 중심은 가운데 있지 않다. 나의 마음을 편히 두고 싶은 곳, 그곳에 중심이 있다고 믿는 것. 나의 블루를 새로운 블루로 덧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래블루스, (TRAVEL BLUES), 여행하며 펜으로 춤을 추는 일, 나만의 무게 중심을 찾는 일이다.
P.S. 당신만의 무게 중심을 찾는 방법은 무엇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