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김훈 - 연필로 쓰기

2. 김훈, 우리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 남자

by AND ONE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알림,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 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나의 글이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육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연필을 연장 삼아 현상을 벼리고 벼려 나온 문장들은 언제나 건조했다.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한 서술 방식은 (필자의 표현처럼) '물렁하고 아리송한 문장으로 심령술을 전파하는 힐러(Healer)들의 책이 압도적인 판매량을 누리는 독서 풍토'에 굴하지 않으려는 필자의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고지에 연필로 고집스럽게 그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추측해본다.

"인간의 속도로 글을 쓸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일독을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팔릴 김훈의 책이지만, 떡볶이와 보노보노, 곰돌이 푸 등에게 밀려 젊은 세대에게 '호수공원 산신령'으로 둔갑되지 않도록, 5개의 소중한 밑줄을 공유하며 짧은 소개를 마친다.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사업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결혼은 부부가 스스로 확보한 물적 토대에 생활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결혼은 놀이가 아니다.
뜨거운 열정은 그 안에 지겨움이 들어 있어서 쉽게 물린다. 연민은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물타기로 싸움의 포인트를 흐려놓으면 그 상대 쪽도 결국은 물을 탈 수밖에 없어서, 물타기는 일단 죽기 살기의 외양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함께 사는 결과로 끝난다.
사내가 사라지자, 풍경은 완벽한 무인칭으로 변했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보는 사람을 소외시켜서 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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