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에리히 프롬 - 사랑의 기술

3. To love or To be loved

by AND ONE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주체 의식, 에리히 프롬이 강조한 가장 중요한 사랑의 기술.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래의 배우자에게 바라는 외모, 연봉, 재산 수준과 관련된 기사들이 나올 때면, 에리히 프롬의 또 다른 작품, <소유냐 존재냐 - To have or To be>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 사회는 유별나게 불행한 사람들의 사회다. 고독하고, 불안하고, 억울하고 파괴적이며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 그렇게 아끼려고 애쓰는 시간을 한편에서 낭비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마치 서로를 물고 뜯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혐오 표현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성을 표출한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상처가 따를 수밖에 없을 텐데, 고슴도치와 같은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 것이다.


유별나게 불행한 사회에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건 방백의 형태를 빌린 자기 다짐이다.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두 인간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지 못한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성격이 비생산적인 사람들은 주는 것을 가난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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