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했을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 날
‘1984년 8월 입주 예정인 송파구 장미아파트 3차 분양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엄마는 어린 나이에도 뭔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닐까? 두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강남 아파트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그간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챙겨 붓던 청약통장을 들고 강남 한복판 분양사무소를 찾았다.
평소 언니가 사는 아파트를 늘 부러워했던 엄마는 지긋지긋한 남의 집 전세살이를 끝내고 싶었으리라. 큰 통창과 거실, 또 입식 주방과 아이들 각자의 방이 있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욕실에 화장실까지 갖춰진 아파트를 동경하며 매달 당신의 팬티 한 장 사는 게 아까워서 낡은 팬티의 구멍을 각종 꽃으로 수놓아 가면서도 청약통장만은 밀리지 않고 열심히 채워나갔다.
당시에는 선분양 방식으로 지금처럼 우선순위 따지고, 점수별로 끊어서 입주자가 정해지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서 추첨하는 방식으로 입주자를 정했다고 한다. 당첨만 되면 일명 ‘딱지’라 불리는 분양권을 받던 시절. 엄마는 꿈을 안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분양사무소를 갔고 운 좋게 당첨되었다. 그것도, 지금 가장 비싸다는 그 강남의 장미아파트를 말이다. 당시 엄마 나이가 서른서너 살쯤 때였다. 엄마도 우리 남매의 인생도 통째로 바뀔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샐러드에 돈가스로 저녁을 차렸다. 입맛이 토속적인 나는 돈가스, 샐러드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 이상한 모양- 당시 엄마가 해준 돈가스는 빵가루를 입힌 제대로 된 돈가스였지만 내겐 넓적한 빵처럼 보였다-에 짜증을 냈다.
“엄마! 난 오늘 청국장 해주기로 했잖아!”
“시끄러워! 이제 아파트 가서 살면 그런 냄새나는 건 자주 먹지도 못해!”
“이게 뭐야! 빵이야?”
나는 돈가스를 포크로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엄마는 내 그릇을 가져가 도마 위에서 서걱서걱 고기를 썰어 다시 내어 주었다. 뽀얀 속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를 보고 나는 금세 태세를 전환했다.
“와! 고기네?”
“얼른 먹기나 해!”
케첩을 살짝 찍어 한 입 베어 문 순간, ‘세상에······,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지!’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오물거리며 말했다.
“와!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
엄마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와 동생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파트로 이사하면 맨날 이런 것만 해줄게. 지긋지긋 냄새나는 청국장 같은 거 말고······.”
“엄마, 근데, 난 청국장이 더 좋은데?”
“시끄러워! 벌써 한 접시 다 먹어놓고 뭐 청국장이 더 좋아, 좋기는 지지배야!”
“헤헤헤······, 난 엄마가 해준 건 뭐든지 다 맛있어!”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본 엄마의 얼굴은 어제와 딴판이었다. 심각하고 속상한 얼굴은 우리 남매가 언제 엄마가 버럭 화를 낼지 모르니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주인집 마루에 걸터앉아 전화를 붙들고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언니, 이게 계약금이 들어가야 내가 그 아파트를 어떻게든 할 수 있다니까?”
“야! 계약금 내면? 네가 중도금이랑 잔금 낼 능력은 되니? 꿈 깨고, 너희 집 형편에 대출이 나올지도 모르고, 괜히 계약금만 날려!”
“언니, 그래도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좀 도와줘!”
“됐어! 난 너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 너 100% 계약금 날려!”
“언니, 진짜 너무한다.”
엄마는 전화를 탁 끊고는 다시 여기저기 몇 통의 전화를 더 하는 듯하더니, 분양사무소에도 전화를 걸었다.
“이 계약금은 언제까지 내야 하죠?”
“일주일 안에 못 내시면 다음 순위자에게 넘어가요”
“아! 일주일이요. 알겠습니다.”
엄마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 팔자에 무슨 아파트라고······. 에혀~”
엄마는 곧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지으셨다. 온 집안에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가득해졌다.
“지니야! 종희야! 얼른 들어와 씻자!”
꼬질꼬질한 손과 얼굴을 좁은 부엌에서 씻겨주던 엄마와 마주 앉아 물길을 맞으며 맡았던 그 냄새. 꿀밤 한 대씩 맞아가면서도 잔소리 끝에 먹을, 맛난 저녁 생각에 신이 났다.
우리가 씻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궁이 옆에 풍로 위에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이 그 구수하고 정겨운 냄새가 오십이 넘은 지금 나의 기억 속에 포근하게 떠오른다..
엄마의 청국장은 좀 특별했다. 하얀 무를 길쭉하게 썰어 넣어서 푹 익히지 않은 무가 설겅설겅 씹히는 맛이 좋았다. 또,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콩알이 살아있는 청국장과 한 숟가락 푹 떠서 흰 밥 위에 올려 쓱쓱 비벼서 빨간 김치를 척 얹어 먹으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더 바랄 것이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청국장은 유난히 맛있었다. 돈가스의 느끼함보다 더 구수하고 좋았다.
“엄마! 난 엄마 청국장이 진짜 좋아!”
“그래! 많이 먹어!”
그 뒤로 우리는 한참 동안 지하 방을 전전하며 이사를 다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문득 그때의 아파트 일이 궁금해 물었다.
“엄마, 옛날에 아파트 당첨됐을 때, 왜 안 들어갔어?”
“엄마가 생일을 잘못 써서 못 들어갔지 뭐니! 실제 생년월일이랑 호적 생일이 달라서 다른 사람한테 딱지가 넘어갔지 뭐!”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니까 엄마가 멍청해서 그랬지 뭐······”
“와! 우리도 강남 8 학군에 살 수 있었는데······, 아깝다.”
“내 팔자에 뭐······.”
엄마는 모든 상황이 안 돼서 놓친 아파트에 대해 엄마의 실수로, 엄마 팔자에 그런 복이 없어서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빌려보려 했지만, 결국 돈을 빌릴 수 없어서 집 계약을 못 했다고 자식들에게 말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모든 상황은 엄마의 실수로 인해 없어진 기회로 우리에겐 전달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했던 말······.
“우리 지니 청국장 맘 놓고 끓여 주려고 엄마가 큰 실수를 했지 뭐······.”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표 청국장을 이젠 어디서도 못 먹는다. 하지만, 내가 가끔 그 기억을 더듬어 끓여 본다. 요즘엔 제품들이 좋아서 어렸을 때처럼 냄새가 많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싫어한다. 한두 숟가락 떠먹기는 하는데, 나처럼 좋아하진 않는다. 확실히 내 입맛은 안 닮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또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하하하.
집은 가족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다. 나는 단칸방에 지하 셋방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한 번도 우리 집, 우리 가족이 살던 공간을 싫어하거나 남의 집과 비교하며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냥 엄마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그 공간, 그 기억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겠다고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10년 동안 밥 냄새, 청국장 냄새 진동하는 그런 공간을 꿈꾸며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그 추억을 아들에게 주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절대 ‘내 팔자에······.’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다짐이 얼마나 내게 큰 마법을 일으키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좌절할 수 있다. 실패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꺾어버린다면 희망이 없질 않겠는가? 그때의 엄마를 만나면 토닥이며 괜찮다고 해줄 수 있는데, 나는 충분히 행복하게 잘 자랐노라고 말하면서······.
나도 지금 청약을 붓고 있다. 이젠 아들을 독립시켜 줄 계획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날이 오기 전까지 아들의 기억 속에도 ‘집’ 하면 따뜻한 밥과 구수한 청국장 같은 음식이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