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억

노란 국물과 부부싸움

by 인지니

솔직히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께선 참 많이도 싸우셨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뒷문으로 나간다.’고 하질 않던가? 돈에는 관심 없는 아빠 덕에 엄마는 늘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니셨고, 쪼개고 나누며 사느라 전전긍긍하셨다. 물론 나는 그때는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을 해 본 적도 한 번이 없었다.


나도 아빠를 좀 닮은 면이 있어선지 그냥 하루 잘 먹고 학교 다녀오면 큰 불만도 원하는 것도 크게 없었던 터라 나름 만족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나중에 들으니 어려울 때마다 이모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런 환경이다 보니 나는 종종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을 목격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그게 아주 어려서 내가 여섯 살 때쯤 부모님의 싸움 끝에 경찰서까지 다녀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 싸움 이후론 엄마와 아빠는 뭔가 싸움의 기류가 풍기면 아빠가 먼저 자리를 피하며 우리 남매 앞에서 짧은 말싸움 외에 험하고 길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다.


오늘은 그 여섯 살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경찰서까지 갔던 엄마와 아빠의 싸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그날의 싸움은 부모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과격한 싸움으로 기억이 된다.

늦은 퇴근을 하시는 아빠를 기다리며 집안엔 온통 카레 냄새가 가득했던 저녁. 나는 동생과 종이 인형을 오려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지니야! 아빠 왔다~”

“와~ 아빠다!”


나와 동생은 단칸방의 방문을 열고 신을 벗는 아빠를 반기면서도 아빠가 아니라 아빠 손에 들린 노란 종이봉투를 향해 달려갔다. 나와 동생을 양팔로 꼭 안아서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을 비비는 아빠의 몸에서 나는 옅은 술 냄새와 온몸에 밴 담배 냄새는 싫으면서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반가운 건 이미 끝났고, 다음 순서는 그저 아빠 손에 들린 게 뭔가 하는 게 최고의 궁금한 사항이었다. 아빠가 봉투를 내게 건네자마자 그 안을 열심히 보던 나는 센베이(땅콩이나 김가루를 넣고 얇게 만든 전병류 과자)를 보고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와! 센베이다! 엄마, 나 이거 한 개 먼저 먹어도 돼!”

“안돼! 저녁 먹고 먹어!”

“배고픈데?”

“아빠 오셨으니까 얼른 밥 먹자!”


아빠는 우리를 얼른 내려주시고는 엄마를 보고 말씀하셨다.


“애들이랑 먼저 먹으라니까?”

“당신 어차피 들어와서 또 밥 찾을 거잖아! 상 두 번 차리기 싫어!”

“그리고, 지금 월세 낼 돈도 없는데, 저런 과자는 뭐 하러 사 들고 다녀”

“······”

“이달 그림은 많이 보냈어? 또 바둑만 두고 있었지?”

“나중에 얘기하고 밥부터 먹자!”


엄마는 밥상을 들고 오셨다. 하얀 쌀밥 위에 노란 카레가 얹어져 있었다. 그리고, 빨간 김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비벼주는 한 공기를 뚝딱 먹었다.


“엄마 더 줘!”

“넌 이게 맛있냐?”

“응! 엄마가 해 준 건 다 맛있어!”


나는 엄마가 또 비벼 준 카레 한 공기를 받아 내 앞에 놓고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서툰 젓가락질로 김치를 집다가 잘 안 되니 젓가락을 포크처럼 꾹 찍어 김치를 먹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 애들이 아무거나 잘 먹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엄마는 노란 카레 국물이 담긴 대접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말씀하셨다.


“이게 뭐니? 애 키우는 집에서?”


아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카레 국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해장해?”

“······.”

“어쩔 거냐고? 월세도 그렇고, 뭐 고기 생선이라도 한 덩이 살 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알겠다고, 그만해!”


엄마는 또 카레 대접에 숟가락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게 뭐냐고 이게······.”

“그만하라고”


아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은 슬슬 쭈뼛거리며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왼손잡이였던 (뒤로 강제 오른손잡이가 됐다) 터라 더 젓가락질이 서툴렀는데, 내가 김치를 잡으려다 김치가 사방으로 튀자. 엄마가 내게 버럭 화를 냈다.


“이놈 지지배! 젓가락질 똑바로 못해!”


나는 젓가락을 잘 잡으려 두 손으로 젓가락을 탁탁 쳐서 왼손으로 젓가락을 다시 잡았다.


‘딱!’


눈앞에 순간 뭐가 왔다 가며 이마가 번쩍하며 살짝 통증이 느껴졌다. 아빠가 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탁' 친 것이다.


“오른손으로 잡아!”


아빠가 무섭게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옮겼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왼손으로 김치를 잡아 밥 위에 얹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려니까 아빠가 한 번 더 밥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톡 때렸다. 나는 순간 너무 서럽고 속상해서 엉엉 울었다.


“아니, 왜 애 머리를 때리고 그래?”

“당신이 잔소리하는 거 듣기 싫고, 계집애가 왼손 쓰면 시집도 못 가!”

“아니, 이따위로 살 거면 시집 안 가는 게 낫지 뭘 그래?”

“그만해라!”

“뭘 그만해! 이러고 살라고 서울서 의정부까지 왔어? 이 근처로 오면 월급은 잘 나온다며? 왜 한 푼도 안 가지고 오는데?”

“그만하랬잖아!”


‘와장창’


순간 필름이 정지된 영화처럼 모든 것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눈앞에 밥상이 뒤집혀 있고 방바닥에 김치와 그릇들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왼손에 젓가락을 들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생각난다..


‘어? 아직 밥 다 못 먹었는데?’

동생은 울기 시작했고, 놀란 엄마는 아빠를 무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주 가지가지하려고?”

“그만하라고, 그만!”

“그만 안 하면 어찌할 건데?”


아빠가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돈 돈! 좀 그만해! 아주 지겨워!”

“지겨워? 그럼, 나보고 애새끼 둘 데리고, 길바닥에 나가서 굶어 죽으란 거야? 책임감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만하라고!”


아빠가 뭔가를 집어 들고 벽 쪽으로 던졌다. 엄마가 벌떡 일어나서 아빠를 밀쳤다. 나와 동생은 잔뜩 겁나서 둘이 방구석으로 이동했다. 우리 둘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씩씩거리며 엄마를 때릴 듯한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우~ 이걸 그냥!”

“왜? 이젠 때리기라도 하게?”


엄마는 더 악다구니를 쓰며 아빠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때려봐! 때려봐!”

“아우! 이걸 확!”

“때려보라고, 때려봐!”

“아우~”

“때려! 왜 못 때려!”


“킥킥킥…. 하하하 꺄르르르르…….”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그때 내가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심각한 상황에도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지금도 그 모습이 내 머릿속엔 사진 한 장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한쪽 벽에 서서 아빠는 계속 때릴 듯, 한쪽 팔을 들고 ‘아우~ 아우~’만 연발하고 엄마는 까치발을 들고(우리 엄마가 아빠보다 키가 4cm 정도 더 크다) 아빠보다 위에서 아빠를 내려다보며 때려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내 눈엔 너무 웃긴 걸 어쩌겠는가? 일단 웃어야지! 하하하


그 뒤로 나는 아빠 엄마 싸움 흉내를 내며 온 동네에 어른들과 엄마 아빠에게 큰 웃음을 드리며 집안 망신을 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내가 웃기 시작하니까 옆에서 보던 3살짜리 동생도 그 모습이 웃겼었던지 같이 까르르 웃었고, 우리가 웃는 모습에 아빠와 엄마는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기가 찼는지 두 분 다 웃으셨다. 그리고, 엄마는 욕쟁이답게 같이 웃다가 어색한지 툴툴거리며 나를 보고 말했다.


“저년이 미쳤나?”


나는 입은 험하게 말해도 엄마의 표정이 좀 누그러진 게 보여서 더 까르르 웃었고, 아직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엄마 아빠 흉내를 내며 말했다.


“엄마가, 때려봐! 때려봐! 그러니 아빠가 아우, 그러니까 또 엄마가 때려봐, 때려봐!, 아우~ 확 그냥…. 너무 웃겨~ 엄마가 더 큰데, 아빠가 맞을 것 같아!”


내가 엄마와 아빠를 흉내 내며 그렇게 말하는데, 엄마도 아빠도 내 모습에 웃어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동생도 웃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밥상을 치웠다. 나는 두 분이 화해하신 줄 알았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와 동생은 잠이 들었고, 가물가물 잠이 들려는데, 아빠가 동생을 업고, 나에게 신발을 신기셨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아빠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엄마는 우리를 잡지도, 따라나서지도 않고 벽만 보고 앉아있었다. 살짝 어깨를 들썩이는 것 같았다.


난 어두운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웃음기 전혀 없는 아빠는 나의 손을 잡고 노란 가로등 하나 켜진 골목길을 걸어 나갔다. 종종거리며 아빠를 따라 걷던 그때의 느낌은 춥고 너무 졸렸다. 당시 온 사방이 논밭이던 의정부 한 동네의 밤길은 깜깜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는 지나는 택시라도 잡으시려고 했었는지 경인선 기찻길을 건너 큰길로 나갔다. 버스 승차장에 아이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을 잡고 선 아빠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어린 나도 이제 우린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무렵, 길 끝에서 경찰차가 다가와 우리 앞에 섰다.


“통행금지 시간에 애들이랑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지금 서울엘 가야 하는데, 차가 없어서요.”

“이러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일단 차에 타세요. 신원조회하고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경찰 아저씨는 뒷문을 열어 나를 번쩍 안아 먼저 차에 태웠고, 아빠는 동생을 돌려 안고 같이 차에 탔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빠의 손에 땀이 가득했고, 살짝 떨리는 듯했다. 사실 그땐 유치원도 다닐 때가 아니라서 경찰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도 잘 몰랐지만, 아빤 내가 무서울까 봐 손을 잡아주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가 더 긴장했던 듯도 싶고······. 암튼, 그냥 경찰서에서 아빠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우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셨고, 그 뒤로 난 경찰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단 기억만 난다.


그날 아빠는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은 집에 안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경찰서에서 주무시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셨고, 쭉 화실에서 먹고 자고 다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우리가 노란 카레 국물만 먹었다면 난 카레를 지겹게 싫어했을 것이다. 엄마는 사실 이미 카레 재료가 다 있음에도 일부러 카레만 넣고 카레라이스를 만드셨던 것임을 다음 날 카레에 큼직한 야채들을 보고 알았다. 뒤로는 여러 음식 재료를 넣은 맛난 음식을 잘해 주셨으리라. 솔직히 내가 먹는 걸로 속상해서 배 곯았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엄마는 그 와중에도 우리 남매를 잘해 먹이셨다.


카레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나는 엄마의 맛 난 김치만 있다면 카레는 언제나 좋았다. 더욱이 엄마는 채소도 고기도 큼직하게 썰어 넣고 해 주셨기에 돼지고기 좋아하는 나는 카레가 진짜 좋았다. 아무튼, 한밤 가출미수 사건을 만들었던 카레 국물 요리는 엄마의 아빠 협박용 쇼였던 거였다.


바둑을 워낙 좋아하는 아빠가 수출용 그림의 마감해야 하는 일을 미루고 내기 바둑을 두는 걸 화실 언니에게 전해 듣고는 아빠가 각성하길 바라며 벼르고 일을 벌이신 것이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들어온 아빠가 되레 화를 내시는 바람에 큰 싸움이 됐던 그 사건!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 더 이상의 육탄전은 없었다.

내가 온 동네, 온 친척들에게 그날의 일은 온몸으로 엄마 아빠의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흉내 내고 얘기를 하는 통에 두 분은 창피함을 감당해 내셔야 했다. 그 효과인진 모르겠으나 그 뒤로 두 분은 우리 앞에서 싸우는 일은 적극적으로 자제하셨다.


내가 살아보니 삶이 그렇게 치열하더라! 하지만, 싸우더라도 그게 함께 잘살아 보자 우리 잘해 보자! 그런 싸움이라면 싸운 뒤에 더 다져지고 돈독해지는 게 싸움의 어떤 결과가 아닐까? 내 기억의 부모님 싸움을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참 오랜 시간 두 남매를 키워내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사셨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열심히 사셨던 두 분이 이제 모두 하늘의 별이 된 지금! 카레를 보면 그날이 가끔 떠오른다.




저녁으로 카레를 해서 아들과 마주 앉아 먹으며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얘길 해 주니 아들이 웃는다.


“엄마 그때 밥 다 못 먹어서 울었지?”

“응? 아마, 그랬을지도······.”

“하하하······.”

“넌 세상 잘 만난 줄 알아라!”

“왜?”

“외할아버지 계셨으면 너 숟가락으로 딱밤 몇 번은 맞았을 거다. 아마······.”

“근데, 엄마! 외할아버지도 급할 때 왼손이 먼저 나오던데?”

“진짜?”

“이런, 나중에 아빠한테 가서 따져야겠다.”

“하하하, 그러셔~”


오늘도 마땅한 찬거리가 없어 쉽게 만들 수 있는 카레로 아들과 즐거운 저녁을 먹으며 추억을 하나 소환하고, 또 추억을 하나 만든다.

엄마 아빠 그 위엔선 안 싸우고 잘 지내고 계신 거죠?^^


작가의 말


부모님이 밥상을 뒤엎던 일촉즉발의 순간, 처음엔 내가 왼손으로 젓가락을 써서 부모님이 싸우시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 열심히 오른 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 했어요. 하지만, 왜 여섯 살의 나는 웃음이 터졌을까?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까치발을 든 엄마와 쩔쩔매던 아빠의 슬랩스틱 코미디. 비극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제 기억 속 카레는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나는 맛입니다. 왼손잡이 아빠가 왼손잡이 딸에게 숟가락 딱밤을 때리던 그 치열하고도 우스꽝스러웠던 순간......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던 날, 우리 집엔 노란 카레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밥상이 뒤집히고 경찰차까지 타야 했던 그 소란스러웠던 밤. 하지만 그 밤을 구원한 건 우리 어린 남매의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 바로 우리가 사랑으로 이뤄진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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