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한 대 걸러서······.
엄마는 늘 아빠와 우리를 위한 음식을 하시기만 했지 뭘 좋아하시는지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게다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잘 모를 정도로 매일 우리가 남긴 음식, 오래돼서 삭은 밥, 눌어붙은 누룽지를 끓인 밥이나, 반찬을 만들고 남은 양푼의 양념조차 아까워 그 양푼에 밥을 넣어 비벼 드시곤 했기 때문에 지금도 엄마는 뭘 좋아했지?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그런 중에도 떠오르는 한두 가지 음식 중, 이 음식은 엄마가 좋아하셨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해 드셨던 음식이 있다. 내가 아무리 맛없다고 해도 굽힘이 없이 만들어 먹던 이 음식!
아빠가 술 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하는 날이나 일요일 점심때 엄마는 거의 이 음식을 만들어 드셨다.
먹을 것 귀하던 옛날 어린애들 키우는 집에는 밀가루와 국수, 달걀은 기본 바탕이 되는 식재료가 아니었을까? 감자 수제비, 계란 볶음밥, 부침개 등과 간식처럼 한 끼 식사를 금세 때울 수 있는 재료 중에 우리 집에서 엄마가 자주 해 주시는 게 바로 국수였다. 그것도 잔치국수!
엄마는 정말 잔치국수에 진심이었다. 버섯볶음에 흰색과 노란색의 계란지단, 호박볶음, 당근 볶음, 김 가루와 무엇보다 정성 들여 푹~ 끓인 멸치 육수와 탱글탱글한 면발, 먹기엔 간편하지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임에도 꼭 잔치국수를 하셨던 엄마.
“아~ 맛없어! 난 김치 양념에 비벼줘!”
“엄마가 직접 멸치 육수 내서 끓인 거야! 얼마나 몸에 좋고 맛있는데, 먹어봐!”
“싫어! 난 그냥 비벼줘!”
“국물 한 번 먹어보라니까?”
“싫어! 그럼 종희처럼 간장에 그냥 비벼줘!”
엄마는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을 주시면서도 금세 김치를 송송 썰어 고추장과 설탕을 넣고 비빔면을 만들어 오셨고, 나는 그 매콤 달콤한 비빔국수를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어치웠다. 매번 국수를 먹을 때마다 나는 비빔국수를 찾는데도 엄마는 꼭 잔치국수를 가져와서 먹어보라고 하시니, 꼭 실랑이하게 됐다.
“아! 나는 김치 비빔국수가 좋은데, 왜 맨날 잔치국수를 주는데?”
“네가 안 먹어봐서 그래! 이 멸치국물에 국수가 얼마나 맛있다고······.”
“아, 난 김치 비빔국수가 좋다고······.”
세월이 흘러 잔치국수 먹을 일이 종종 있어도 난 꼭 비빔국수를 먹는다. 아직도 그 깊은 맛을 잘 모르겠기도 하고, 비빔국수가 맛있는 걸 뭐 어쩌겠는가? 확실히 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가끔 국수를 삶으면 난 꼭 김치비빔국수를 먹고, 아들은 엄마가 내 동생 종희에게 해 주셨듯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국수를 비벼줬다. 그게 다였는데, 아들이 고3 때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우리 아들은 비빔국수보다 잔치국수를 더 좋아한다는 것! 갑자기? 왜? 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다 큰 아들이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수 있는 게 뭐 놀라운 사실이겠냐 싶지만, 왜 하필 피자, 치킨 햄버거, 파스타 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랑 어울려 있다가 자주 먹은 애처럼 잔치국수를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
한 번은 비빔국수를 내어주는 나에게 아들이 과거의 내가 엄마에게 말했듯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엄마! 난 그 진한 멸치 육수에 야채 올라간 그 잔치국수, 그게 더 좋던데?”
“······, 뭐, 애가 그런 맛을 알아?"
"뭐 애들은 맛도 모르나? 진한 멸치육수에 국수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
"너, 뭐냐? 외할머니가 환생을 했냐? 똑같은 말을 해?”
"잔치국수는 뭐 외할머니만 먹어? 참, 내! 갖다 붙이기는······."
난 가끔 울 아들을 보면 엄마가 다시 태어났나? 싶게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하는데, 바로 먹여보지도 않은 잔치국수의 멸치국물 맛을 아는 이런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생각을 진심으로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또 있다.
내가 스물두 살 되던 해 4월. 엄마는 오랜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되셨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엄마 짐을 정리하면서 엄마의 일기장을 보았다. 워낙 내가 속을 썩이고 힘들게 했던지라, 나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 속상함이 가득한 일기장에 유독 걸리는 말이 있었다.
<우리 지니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산바라지에 아기 기저귀 갈아주고 할 때까지만 살고 싶은데······. 엄마 없어 서러운 건 안 물려주고 싶은데······.>
나도 엄마 없이 결혼식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그때도 그 말이 가슴 아파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으려 노력했지만, 난임으로 결혼 5년 차까지 아기 소식이 없었다. 병원을 3년이나 다녀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나는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열심히 새벽기도로 하느님께 빌었다.
“제 팔자에 아이가 없으면 하느님께서 들어 쓰실 일꾼이라도 저를 통해 나오게 해 주시던가, 우리 엄마를 다시 저를 통해 태어나게 해 주세요. 제가 잘 키워서 하느님 보시기에 흡족할 수 있게 사랑으로 잘 키워볼게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기도지만 당시엔 정말 진심으로 너무 간절하게 기도했다. 진짜 일 년 내내 아침잠 많은 내가 새벽 6시 미사를 나가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끝내고 인공수정을 하자고 했고, 담당 선생님께서 내 기억으로 2천만 원인가?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엔 나라에 지원이 전혀 없어서 인공수정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기에 대한 간절함에 인공수정을 하기로 결정하고, 일주일간 쉬기로 했다. 근데,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그 일주일 사이에 지금 우리 아들을 임신하게 됐다. 2천만 원 벌어준 아이라고 남편이 태명을 대박이라고 지을 정도로 우리에겐 행운의 아이였다. 각설하고 이렇게 기도하고 태어난 우리 아들이 커가면 커갈수록 친정 엄마 생각이 나는 행동을 많이 하는 데다가 특히 음식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 음······. 하하하. 뭐, 그렇다는 얘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임신 중에 잔치국수를 내 손으로 만들어서 한 대접을 먹었던 적이 있다. 비빔국수를 하려고 국수를 삶고 김치를 송송 썰어서 양념을 했는데, 갑자기 멸치육수에 푹 담근 국수가 먹고 싶은 게 아니겠는가? 당장 육수를 낼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멸치 다시다를 이용해서 육수를 내고, 야채소가 없어 김치 양념을 얹어 먹었는데, 물에 말아놓은 국수를 그때 이후로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적이 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들이 태어나서 내 손으론 먹여 본 적 없는 잔치국수를 스스로 찾아서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신기하게 생각이 되지 않겠는가? 잔치국수를 좋아하다 못해 잔치국수 잘하는 단골집도 있더라? 입맛! 그거 진짜 유전도 되는구나!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국수를 삶았다. 나는 김치비빔국수, 아들은 멸치 육수가 없어서 해물을 넣고 해물 육수를 만들어 보았다.
“어때, 먹을 만해?”
“네~ 애쓰셨어요.”
하하하 맛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럴 땐 꼭 그 속에 엄마가 들어앉은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어봤다.
“그 속에 엄마 있지?”
“어! 그래~”
“이 눔 시끼가?”
“엄마한테 말 이쁘게 해야지!”
“국수나 드세요.
”어! 그래~“
하하하, 우리 모자는 이러고 또 논다.
엄마를 추억하는 순간은 늘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엄마가 아들로 환생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고, 유난히 엄마와 입맛이 닮은 아들이 친정엄마의 유전인자를 많이 받은 것 같은 게 난 정말 좋다. 하필 외할머니 입맛을 닮은 게 신기해서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지만 하늘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당신을 기억하고 생각해 주는 딸과 손주가 흐뭇하시리라 믿는다.
지금은 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아들 위주로 식단을 짜는데, 가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아들에게 강요할 때가 있다. 엄마가 내게 멸치 육수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내가 맛있으니까 아들에게 더 주고 싶은 그 마음! 끝까지 싫다고 안 먹으면 참 야속한데, 울 엄마도 그랬겠지? 싶어지면 이제야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때, 좀 철이 있었어서 엄마가 권해주는 대로 맛나게 먹으면서 칭찬한 번 해 드릴걸······. 맛있는 거 먹으면서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던데, 더구나 내가 맛있다고 권한걸 진짜 맛있다며 먹어주는 것도 입맛도 날 닮은 것 같아서 더 애착이 가고 이쁘던데, 그땐 왜 그렇게 엄마에게 밉게 굴었을까? 나쁜 열 살 지니!
‘엄마! 그래도 엄마 돌아가시고 그 후로 단 한 번도 엄마 해 주시던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답니다. 엄마의 음식들은 앞으로도 평생 다시 맛볼 순 없겠지만, 제 기억 속에 남은 그 맛의 기억으로 엄마를 떠올리고 있어요. 아직 많이 남은 엄마가 해 주시던 맛난 음식얘기를 하면서 엄마를 추억해 보려 합니다. 엄마 그곳에서 저 잘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한 50년 뒤에 봬요.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