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즈 다이어리
나와 고2, 3학년을 같은 반이었고, 동아리 활동도 3년 내내 같이했으며, 재수도 함께해서 한 4년을 늘 붙어 다니던 친구가 있다. 우린 재수 끝에 서울의 한 예술 대학교에 같이 합격했었다. 나는 문창과 친구는 작곡과에······.
하지만,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두 번째 또 학교를 포기해야 했고, 친구는 혼자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 매년 한 번씩 안부만 묻고 살기를 수년, 친구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으로 생활권을 옮겼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지방으로 이사 간 친구와 거의 연락하지 않았고, 일 년에 한 번 생일날 축하 문자를 보내는 정도의 연락만 하고 살았다. 그것도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없었던 친구였는데, 작년 말 친구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잘 지냈어?”
“그럼, 넌 어때?”
“나야 뭐~”
“가족들은 다 잘 지내고? 너 아들은 군대는 다녀왔니?”
“우리 아들은 천식이 있어서 공익이야!”
“어머! 우리 아들도 눈이 안 좋아서 공익근무 판정 났는데, 자리가 나지 않아서 지금 대기 중이야!”
우리는 그간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전했다. 그래도 친구 중에서 제일 괜찮은 집에 시집 잘 갔다는 소문과는 달리 남편의 사업 때문에 맘고생도 많이 했고, 낯선 지역으로 이사 후 외로움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과거 둘이 함께하던 기억을 소환하며 여고생이었던 당시로 돌아가 ‘까르르’ 거리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야! 우리 재수할 때 너 500원에 남자 신상정보랑 전화번호 적혀있는 거 뽑던 기계 생각나?”
“어! 맞아! 그걸로 그때 내가 잠깐 연대생 만났었잖아!”
“그랬나? 암튼, 다른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그런 자판기가 있었다고 얘기해도 아무도 안 믿어! 그런 기계가 어딨었냐면서 말이야! 진짜 답답했는데······.”
“맞아! 나도 주변에서 안 믿더라.”
나는 둘만 공유했던 재밌던 20대 초반의 기억을 소환하며 추억에 웃음이 지어졌다.
“지니야! 너 옛날에 우리 축제때, 그 할머니 기억나?”
“할머니?”
“그래, 우리 보고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던 그 할머니 말이야!”
친구와 나는 어린 나이에도 손금과 관상 이런데 관심이 많았다. 나는 당시 관상과 손금에 관한 책을 보면서 공부까지 했었다. 그리고,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관상 손금을 봐주면서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학교 축제 때였다. 우리 학교는 서울 대학로 한가운데 남학교 사이에 둘러싸인 유일한 여학교였고, 주변에 남학생들이 많았다. 우리는 학교 앞에 좌판을 깔고 사심 가득 남학생들의 손금과 관상을 봐주기로 했다. 한 명당 천 원씩 받고 열심히 친구는 손금을 나는 관상을 보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님 한 분이 우리 둘을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그리고, 애들이 좀 빠진 듯해 보이자,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학생들!”
“네.”
“둘 다, 당장 이런 짓 그만둬!”
“네?”
할머님의 갑작스러운 말에 우린 당황해서 여기서 장사를 하지 말고 치우라는 소리쯤으로 여겼다.
“학교 축제 행사하는 거예요. 금세 치우고 갈 건데요.”
“그게 아니고, 둘 다 기운이 있어! 자꾸 그런 짓 하고 다니면 둘 다 평생 업으로 하는 수도 있어! 절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해! 기웃거리지도 말고, 내 말 명심해!”
할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지나가셨다. 나는 좀 찝찝했지만,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브런치에 올렸던 <무서운 이야기 해주는 언니> 작품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당시 나는 예지몽 같은 꿈도 잘 꾸고, 촉도 좋았기에 예사로 듣고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난으로라도 관상 손금 그런 짓을 더는 하지 않았다.
뭐, 물론 사이사이 필요할 땐 관상 손금 좀 본다고 선무당 짓을 조금 흉내 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아무튼,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고, 거짓말같이 귀신을 보고 시달리던 시간도 겪어냈고,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로 내가 쓰는 글들이 영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할머니의 말씀이 조금은 내게도 맞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어머님부터 해서 무속신앙을 많이 믿으셨다. 때가 되면 당집을 찾아가 신년운세, 사업 운세 등 보기를 하셨고, 친구는 그때마다 엄마를 따라다녔다. 나중엔 자기 혼자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여기저기 남편과 함께 많이 애를 써 봤지만, 차도는 없었단다. 그러다가 알게 된 한 절의 스님에게서 잡귀들은 가라앉히고 자신 곁에 있는 세분의 신에 대해 들었고,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받아들였다고?”
“어! 어쩌겠어! 내가 다섯 살 때부터 곁에 계셨다는데······.”
“뭐? 그럼, 내림굿 같은 거 받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인정하고 수양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넌 주님 함께 하시고, 난 장군님이 함께하시는 거지 뭐······.”
“너 올해 소원이 뭐야?”
“나야 뭐, 늘 같지! 쓰고 싶은 글만 쓰고도 먹고사는 거? 하하하······.”
“그 소원 여름쯤이면 좀 뭔가 일어나겠는데? 그래서 너 지금 올 초반을 잘 보내야 해!”
“뭐래?”
“너 지금 딴짓하지? 딴 데 정신 팔지 말고, 글 써! 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
“지니야! 알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알겠다. 나는 지금 두 달 동안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의미 없이 사람들 만나서 시간만 죽이고 있다. 그리고, 남의 집 어려운 사정에 마음 아파하고, 남의 자식 안타까움에 속상해한다. 물론 인간관계라는 건 필요한 것이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든다.
‘내 마음만 생각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랴 이리저리 끌려다니랴 우왕좌왕 욕심만 내는 내 모습을 보니 뭔가 결단을 내리긴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모르겠다. 갑자기 속이 시끄러워진다. 그냥 친구가 지나치며 할 수 있는 얘기를 내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까? 갑자기 올해 나의 몇 달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됐다.
주변에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 마음 늘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면서도 그 고마운 마음이 걱정하는 길을 걸어가 보고 죽도록 고생해야 정신을 차리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감만 넘치던 10대 때나, 50이 넘은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하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친구의 말처럼 신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 내가 방황의 끝에서도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도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살기 위해 힘을 내며, 한없이 코가 빠져 힘든 순간에도 나를 다독이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모든 원천은 내 안에 나의 중심을 잡고 계신 나의 주님 덕분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 나에게도 신이 함께 계신다고 새삼 느끼게 해 준 친구! 우리 각자 함께하는 신이 다를지라도 우리가 믿고 의지할 그분이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이 힘이 되는 날이다. 사람은 나약하고 어리석질 않은가? 나의 신에게 나의 마음을 내 비추며 바라고 원하는 마음으로 또 베풀고 나누는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은 긍정적으로 또 따뜻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난 또 믿으며 힘내 본다. 내 절실한 기도의 힘을······. 나의 믿음이 나에게 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정한 미소를 전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을 잘 안다. 또 그 어느 신에게 기대고 나를 내어 맡기며 살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릴 적 내 부모가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때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가던 어린이들처럼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에 기대기보다 나를 지켜주고 있을 내 안의 신과 함께라면 우리는 영원히 마음의 평안과 넉넉함을 갖고 이 세상이 조금 더 천국의 모습을 갖게 될 수 있도록 나를 정화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속 시끄러운 설날 전주에 나태해진 나에게 다시 한번,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친구! 반가웠고, 마음 써 줘서 고마워! 이제 자주 연락하며 살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