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번호는 55가 아니라 66이었던 것이다

고소당할 뻔한 슬픈 이야기

by 김행복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힘든 막내작가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난날의 열정과 패기에

스스로 칭찬을 백만 번은 해주고 싶습니다.


10여 년 전, 날이 이미 어둑해진 밤 시간

방송국 여자화장실 세 번째 칸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서러운 눈물을 흘렸던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난 뒤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울렸습니다.


"지금 저희 집으로 문의 전화가 계속 오거든요?

장사를 못할 지경인데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시청자 문의 전화번호를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하는 건 저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온 지 얼마 안 돼

한창 정신없고 힘든 때여서 그랬는지

출연업체 전화번호 뒷번호를

55에서 66으로 잘못 적는 실수를 했던 것입니다.


(정확한 번호는 아니지만 이렇게 두 자리를

실수했던 것 같습니다)


이튿날까지 장사를 제대로 못한 그 식당은

프로그램을 상대로 고소하겠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왔습니다.


물론 피해를 끼쳐 너무너무 죄송한 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저의 이 작은 실수가

범죄 수준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신조는

'실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가 되었고,

업체 전화번호를 몇 번씩 확인하는 건 물론,

무엇하나 무심히 흘러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는

영광의 상처라기에도 뭐 한 강박증이 생겼는데,

확인을 하고 또 해도 마음이 편치 않고

나를 믿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생각해 보면 저는 좀 억울합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무섭게 휘몰아쳤던 그 상황이,

그리고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혔던

그 극도의 불안함이 조금은 억울한 거지요.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상황을 벗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로 인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수 있는데,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어, 괜찮아.'

하며 나를 먼저 토닥여줍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이 참 깊은 시대입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지만,

너무 각박한 세상 속에 던져져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기를 쓰며

살아내야 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힘든 영역에서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하지요.


지금 겪고 있는 그 내면의 힘듦은

절대 당신 탓이 아니고

각박했던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니,

우리는 스스로를 토닥이며 그것이 잘 지나가도록

길을 터주는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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