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

(부제 : 입덧 호르몬아 고마워)

by 최성희

첫째의 돌이 지나고 뱃속에 둘째가 찾아왔을 때였다. 처음으로 엄마독서모임을 기획하고 회원을 모집했다. 그때의 작은 도전이 내 삶을 이런 방향으로 변화시킬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 엄마가 되었던 2019년을 떠올려보면, 나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사람이었다. 또래보다 결혼과 출산이 빠른 편이어서 주변에서 육아하는 모습을 가까이 본 적이 없었고, 당시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 모두 출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나는 ‘잘 키울 수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자란 집이 바로 ‘놀이방’이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내가 유치원생이던 1995년부터 놀이방을 시작하셨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계시니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초창기 10년 정도를 집에서 하셨기 때문에 나는 성장기 대부분을 아이들과 와글와글 함께 지냈다. 자연스럽게 나보다 어린 아이들을 돌봤고, 아기들을 무척 예뻐했다. 가족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정도 경력이면 나중에 엄마가 되어도 잘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출산부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하늘을 찌르던 자연분만의 의지는 긴급하게 진행된 제왕수술로 바로 꺾여버렸다. 수술 다음 날, 두 발로 겨우 일어선 나는 한시라도 빨리 수유를 해야한다며 이것저것 주렁주렁 단 채로 폴대를 질질 끌며 신생아실로 향했다. 놀란 간호사가 폴대 끌고 오는 엄마는 잘 없는데 뭐 하러 이렇게 무리해서 빨리 왔냐며 걱정하는 건지 귀찮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아기를 내 품으로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수도 없이 안아봤지만, 신생아를 품에 안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아기… 어떻게 안아요?” 하고 물으며 엉성한 자세로 첫째를 품에 안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며 자신감 넘칠 때는 언제고 이렇게나 절절매고 있다니.


급한 대로 신생아들의 기본 욕구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육아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인생 첫 육아서였다. 3시간마다 일어나 먹고 놀다가 자는 아기 옆에서, 나도 같은 패턴으로 책을 읽었다. 아이가 먹고 놀 때는 책을 덮었다가 아이가 잘 때 다시 책을 펼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열심히 공부했다. 잠은 부족했어도 엄마로서의 자기효능감은 팍팍 올라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다음 단계의 육아가 궁금해졌다. 공부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읽어지지 않았다. 몇 권 겨우 읽었지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여기저기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육아 철학을 세우고 싶었다. 출산 전에 지역 청년들을 모아 독서모임을 운영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엄마들과 육아서를 읽는 모임을 만들어볼까?’ 그 무렵, 둘째가 내게 선물처럼 찾아왔다.


그런데 둘째 임신 초기에 뜻밖의 고비가 찾아왔다. 입덧이 단순히 속을 울렁이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깊은 무기력과 우울감을 동반한 것이었다. 밝고 에너지가 넘치던 나는 하루아침에 설거지조차 못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그나마 첫째가 있어서 겨우 정신만 붙잡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눈으로만 아이를 돌봤다. 상큼한 레몬차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레몬청을 주문할 힘도, 근처 카페에 나갈 기운도 없었다. 식욕이 강한 내가, 먹고 싶은 걸 포기한다니.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제일 많이 생각한 건 “나는 왜 살지?”였다. 32살 인생에 처음 만나보는 낯설고 어두운 나였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가 지나고 평균적으로 입덧이 나아진다는 13주가 되자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졌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우울증은 나 혼자만의 의지로 이겨낼 수 없다는 것,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입덧 관련 호르몬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덕분에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한 사람에게도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어쨌든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있으면서 바닥을 찍고 보니 삶에 대한 의욕과 에너지가 평소보다 더 많이 끌어올려졌다.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엄마독서모임 기획안을 단숨에 써 내려갔고 평소 나와 육아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가정보육맘카페’에 독서모임 회원을 모집한다며 글을 올렸다.


그땐 몰랐다. 그 작은 모집 글 하나가, 내 삶의 방향을 바꿔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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