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해외까지 가야 했을까

<아이들과 함께한 치앙마이 2주 여행> 에필로그

by 최성희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가. 그것도 여행에 큰 흥미가 없는 남편과 아직 어린아이 2명을 데리고, 돈과 시간을 들여 왜 하필 해외까지 가야 하는가.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가고 싶으니까’라는 생각 하나로 훌쩍 떠나도 되는 걸까. 참 많이도 고민했다. 항공권과 숙박을 다 예약해 놓고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기대감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다. 원인 모를 심장 두근거림 증상까지 더해져 불안한 마음으로 탔던 치앙마이행 비행기(프롤로그 참조). 하지만 다 끝내고 돌아오니,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리던 내 심장은 여행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졌다.


여행의 의미를 떠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2주 내내 우리 가족 넷이 찐하게 붙어 있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낯선 길거리와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새로운 경험들을 함께 겪으며 아이들의 눈은 빛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꼭 끌어안을 수 있었다. 특히 남편과 하루 종일 붙어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쳤을 때에도 짝꿍이 있어 금세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연애기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우리가 2주를 계속 같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붙어 있어 싸움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고 의지가 된다니, 익숙함에 잊고 있던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는 일이, 이렇게나 낯간지러울 수 있다니)


하지만 항상 좋았다고 미화하고 싶진 않다.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다 보면 갑자기 예민해지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가 있다. 분명 내 컨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해외여행을 즐기는 우아한 엄마였는데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외치며 찾는 두 아이의 목소리를 하루 종일 듣다 보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곤 했다. 신기하게도 여행 중 그런 순간들은 글이나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깔끔하게 잊히고, 즐거웠던 추억만 남는다. 아니면 그런 순간마저도 아름다웠노라며 기억을 조작한다. 이것도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들과의 해외여행에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계속되는 새로운 자극이 아이들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였다. 루틴이 무너지면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아이들이기에, 낯선 환경이 버거울까 걱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적응했고, 해맑은 순수함으로 무장한 채 순간순간을 완벽하게 즐겼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완벽한 루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여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쨌든 나는 치앙마이에서 새로운 자극이 주는 짜릿함이 좋았고, 매일 유지하던 일상 루틴들을 잠시 내려놓고 해방되는 느낌도 좋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이들과의 일상을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단조로워진 하루하루에 지쳐 있었다. 내 상태가 그랬다는 것도 여행 중에 깨달았다. 그렇게 고장 나버린 내 심장을 치앙마이가 원래대로 복구해 준 것이다.


덕분에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여행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이자, 세상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기회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며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만 갇혀 있으면 큰 생각을 하기 어렵기도 하다.


가령 성실한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창틀에 낀 먼지를 얼른 없애고 싶은데, 왜 자꾸 미루는 걸까?‘ 같은 생각들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창틀에 낀 먼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런 장면도 있구나, 삶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넓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채워진다. 국내 여행도 좋지만, 해외여행의 경우에 세상과 삶의 방식에 대한 고찰이 더욱 새롭게 떠오르곤 한다.


치앙마이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네 가족이 둘러앉아 여행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아이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첫째는 코끼리도 만나고 예쁜 풍경을 실컷 봐서 최고였다고 답했고, 둘째는 그냥 ‘예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가 좋아해서 좋았다.’고 말한다. 우리 남편한테는 아내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찡하면서 그 마음이 고맙다. 그래도 나 말고 온전히 자신만 놓고 봤을 때 여행은 어떤 의미냐고 다시 물어보니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게 좋다고 한다. 남편에게 여행은 책에서 본 여러 궁금한 것들을 직접 보고 만져보고 체험해 보는 흥미롭고 재밌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던 나보다 여행 내내 다양한 것들에 더 신기해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줬던 남편이었다. 같은 여행을 떠나도 여행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여행에는 또 어떤 의미들이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심장을 고쳐준 치앙마이 여행, 그 귀한 여행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남편과 하온, 나온!


* 에필로그에, 여행 중 루틴으로 가져갔던 그림일기 몇 개를 첨부합니다. 저는 그 시간에 주로 글을 썼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거든요. 여행을 마치고 거의 9개월이 지나 아이들의 그림일기를 펼쳐보고 깜짝 놀랐어요. 9개월 동안 아이들의 그림 실력이 훌쩍 늘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건 이렇게나 흥미롭네요 :)


여행 중 첫째 아이가 그린 그림
여행 중 둘째 아이가 그린 그림
여행 중 남편이 그린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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