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편안해서 평안합니까?

엄마독서모임 오롯이 11월 지정도서 -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by 최성희

엄마독서모임 ‘오롯이’ 13기가 시작되었다. 리더인 나는 매 기수를 기획하며 회원들이 읽고 싶은 책과 주제를 살피고, 그 흐름에 따라 지정도서를 고른다. 지난 기수에는 육아서를 다루지 않았는데, 회원들 사이에서 육아 고민이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다가오는 세 달 중 한 달은 육아를 주제로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지정도서로 육아서를 선정하려니 고민이 깊어졌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부모의 수만큼 다양한 방법과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책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고심하여 심윤경 소설가의 첫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골랐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할머니의 기일인 11월 11일에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작가의 필체가 좋아서 고르긴 했지만 ’할머니‘라는 주제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언뜻 나는 할머니와 특별히 애틋한 추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나도 할머니도 살갑거나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로 살을 부대며 껴안는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를 읽고, 월요반과 화요반 두 차례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내 마음속에서 이미 오랫동안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 할머니는 지혜로운 분이셨다. 평소엔 말수가 적고 조용했지만, 자식을 위한 일이나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서는 단소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분이었다. 첫 손녀인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다. 오랫동안 몸이 편찮으셔서 예민해질 법도 한데, 자식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우리 집에서 1~2년 정도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여러 일이 있었을 텐데, 내 기억 속 할머니는 그저 따뜻하고 편안한 온기로만 남아 있다.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그 사랑은 평화였다. (6쪽)


아이에게 무언가 잘해주려 애쓰다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불만과 다툼의 늪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 힘써 좋은 것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면 족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6쪽)


독서모임의 첫 발제로 나는 ‘편안함’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편안한지, 가족과 스스로에게 편안함을 주는 방식은 무엇인지. 내가 충분히 고민해서 제시한 토론 주제였는데,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진정 편안한가?


타고나길 편안한 기질은 아니다. 남들의 시선과 관심 같은 외부적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에 여러 곳에 신경을 쓰며 늘 약간의 긴장을 안고 산다.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 자신보다는 늘 바깥으로 시선이 가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고 자주 소진되곤 한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쉬지를 못한다. 욕심이 많아 육아도, 집안일도, 나의 일도, 건강도 다 챙기고 싶어 하루하루를 가득 채워 넣는다. 나와 가족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이렇게 바쁘게 애쓰는 나로 인해 우리 가족은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 중에 번뜩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편안하지 않구나. 물론 엄마는 내게 가장 편안한 사람 중 하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편안해서 서로 짜증도 쉽게 내고 감정이 걸러지지 않은 채 바로바로 공유된다. 나는 자식에 대한 희생과 삶을 긍정적으로 밝게 사는 우리 엄마를 굉장히 존경한다. 게다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집안일과 가족들 먹이는 일을 대단하게 해내면서 자신의 일도 30년 넘게 쉬지 않고 이어왔다.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감정적으로 기대지 않는다. 힘들 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엄마는 따뜻하게 품어주기보다는 “뭘 그러냐”, “왜 그러냐”정도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기대면 편안하게 받아주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는 엄마한테 감정적으로 기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살갑지 않은 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성격과 타고난 기질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편안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노력한다고 될지는 모르겠다. 당장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지런함은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느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과 아무 걱정 없이 뒹굴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이 눈과 한 번 더 마주치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순간들 속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편안(便安)‘은 편하고 걱정 없이 좋은, 외부 환경과 시설, 자세에서 오는 느낌이라면 ’평안(平安)‘은 걱정이나 탈이 없는, 외부와 무관하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상태라고 한다.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나는 편안해서 평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남편과 아이들도 편안하고 평안해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아이들이 부모와 맺는 관계와 조부모와 맺는 관계는 달라서, 나에게 편안하지 않은 엄마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편안한 할머니일 수도 있다. 결국은 이번에도 나의 모난 부분을 한 번 더 동그랗게 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좋다. 이렇게 좋은 에세이를 읽고 독서모임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나를 동그랗게 깎아가는 이런 시간들이.

25년 11월 할머니 기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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